지난해 7월 소비자가 끼고 있던 갤럭시 버즈가 굉음을 내며 갈라지는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당시 귀에 통증을 느낀 소비자는 현재도 간헐적인 이명 등 증세를 겪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자체 조사 결과를 근거로 소비자 증상은 사고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조사보고서를 소비자에게 공개하지 않아 조사 객관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6일 갤럭시 버즈 사고를 당한 소비자 A(40대) 씨에 따르면, 착용 중이던 제품이 문제를 일으킨 건 지난해 6월 29일이다. 저녁 시간 집에서 동영상 강의를 보다가 잠시 일어나려던 찰나에 왼쪽 귀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A 씨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고, 그 모습을 본 남편과 아들이 달려왔다.
바로 옆에서 폭발음이 들리는 듯했다고 A 씨는 기억한다. 그는 “총소리 혹은 폭탄소리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황급히 왼쪽 이어폰을 빼보니 이어폰이 갈라진 채 틈이 벌어져 있었다. A 씨는 “플라스틱이 갈라지는 소리는 전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터져 나왔다”며 “폭발할 때 생기는 울림 같은 게 귀에서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안전 주의사항에 폭발·화재와 관련해 연기나 타는 냄새가 나면 제품 사용을 멈추라는 내용이 있지만, A 씨는 어떠한 전조 현상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손쓸 새도 없이 폭발음이 났다”고 전했다.
이어폰이 분해되거나 불이 나지는 않았으나, 통증이 뒤따랐다. 사고 직후 귀 안쪽이 후끈거리면서 아팠다. 다음날 동네 이비인후과에 찾아가니 귀 안쪽 혈관이 터졌다며 진통제를 처방했다.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계속되고, 침을 삼켜야 해소되는 먹먹함이 느껴졌다. 이명도 들렸다. 높은음의 ‘삐~’ 소리가 이따금 불편하게 귀를 찔렀다. 어지럼증도 동반됐다. 며칠 후 청력 전문 의원에 갔다. 의사는 저음 난청 증세도 있다고 진단했다. A 씨는 “전에는 귀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그날 이후 통증을 비롯한 여러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고 1년이 지난 현재, 증상이 호전되기는 했으나 완치는 아니다. 피곤한 날이면 먹먹함과 이명이 심해진다. 그는 1~2달에 한 번씩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고 있다.
갤럭시 버즈 시리즈 폭발 사고는 알려진 것만 세 번이다. 이번 사고 제품은 지난 2019년 출시된 갤럭시 버즈 시리즈 첫 모델이다. 이후 지난 1월과 8월에도 각각 갤럭시 버즈 플러스(2020년 출시) 폭발 사고가 있었다.
제품 문제는 인정, 책임은 회피…자체 조사 결과 공개 안 해 의혹 키워
이번 사고와 관련해 삼성전자 측은 제품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시인했다. 삼성전자 디지털프라자 ㄱ지점 담당자가 A 씨를 만나, 본사로부터 전달받은 대략적인 사고 원인을 설명했다. 사고 이후 6개월 정도 흐른 지난 1월경이었다.
당시 센터 담당자는 “시험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아 (A 씨 증상과 사고 간) 연관성은 더 봐야겠다”라면서도 “회사에서도 제품 문제가 없는데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 제품 변형이 생긴 것과 연관이 있지 않나 보고 있다”고 전달했다. 이어 “저희 제품을 쓰다가 다쳤고, 회사에서도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사고 제품 배터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담당자는 “스웰링 현상 때문에 배터리가 변형됐다”며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면서 기기가 벌어진 것으로 회사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웰링은 배터리 내부에 가스가 발생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양극과 음극 사이로 전자를 이동시키는 액체 형태의 전해액이 가스로 분해되는 것이다. 배터리에 스웰링이 발생하면 성능이 떨어지거나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배터리 부피를 못 견뎌 기기에 균열이 발생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화재를 동반한 폭발로 이어진다.
배터리 스웰링 현상의 원인은 불명확하다. 제조 결함인지,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인지 삼성전자 측은 파악하지 못했다. 정상적으로 생산된 배터리는 수명이 다하는 시점에서 스웰링이 발생할 수 있다. 통상 무선이어폰 배터리 수명은 3년 안팎이다. 사고 제품은 2019년 7월 제조된 것으로, 1년 만에 스웰링 현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사고 시점은 제품 판매 후 1년의 보증기간 내에 해당한다. A 씨는 제품을 자주 사용하지도 않았고 충격을 가하거나 물에 빠뜨린 적도 없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측도 모든 면담 과정에서 소비자 부주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9월 면담에서 삼성전자 측은 A 씨 증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근거는 내부 조사 결과다. 삼성전자 측에 따르면, 시험은 3개 제품으로 진행됐다. 스웰링으로 이어폰이 벌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소음을 측정했다. 최대 순간 소음은 71데시벨(dB)로 나왔다. 여름철 매미 울음소리나 벨소리 수준이다. 소음 측정 수치가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 A 씨 증상과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A 씨는 삼성전자 측이 배터리 결함을 시인한 때부터 줄곧 조사보고서를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1월에는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하더니, 9월에는 소비자에게 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용도로만 쓸 수 있으며 직접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삼성전자 측은 설명했다.
조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게 A 씨 입장이다. 그는 “보고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이어폰에서 난 폭발음으로 귀가 다쳤는데, 연관성이 없다고만 하니까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어폰 플라스틱이 갈라지는 정도를 가정해 소음을 측정했다고 하는데, 주저앉을 정도의 소리였다”며 “그저 플라스틱이 쩍 갈라지는 소리가 아니었다”고 했다.
ㄱ지점 센터장은 “소음 측정은 특정 소리만 대상으로 할 수 없고, 플라스틱이 갈라지거나 배터리가 팽창하는 소리 등 스웰링 현상이 발생할 때 나타나는 모든 소리를 측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단체는 삼성전자의 조사보고서 공개 거부 행태를 비판했다. 소비자가 보고서를 보지 않고서는 기업 자체 조사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다는 설명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박순장 팀장은 “기업 자체 조사 결과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작성됐다면 소비자에게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보고서 내용을 숨기니까 회사에 불리한 내용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품 결함 대부분의 경우 기업이 영업비밀을 빌미로 조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다”며 “소비자 권리 보호와 신뢰 강화를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손해배상 거부하는 삼성, 소비자는 발만 동동
당초 첫 면담에서 삼성전자 측은 A 씨 치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진료비·교통비와 손해배상금을 합의하자고 제안했다. 중간에 합의를 보면 추후 발생한 진료비·교통비 지급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담당자는 “본사도 제품 문제를 인정하고 고객님이 치료받는 상황을 알고 있다”며 “치료비를 나 몰라라 하는 회사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님 증상이 완치라는 게 없고 집중 치료를 받다가 이후에 경과를 보면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 아니냐”며 “집중 치료 이후 경과를 지켜보는 단계가 합의 시점이라고 본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합의 단계가 아닌 것 같다”고 설득했다.
그는 “치료 마무리 상황에서 손해배상을 요구한다는 건 당연하다”며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A 씨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또한 “금액은 조율하면 된다”며 “집중 치료 완료 시점에 완치 안 되는 상황을 증빙해 추가 손해배상을 요구하면 본사 손해사정사가 판단해 고객님과 조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합의 단계에서 삼성전자가 손해배상을 거절하면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완치가 어려워 치료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의사 소견을 받은 A 씨는 향후 발생할 치료비를 추산해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삼성전자 측은 지난 1년간의 치료비와 교통비 등 약 130만원을 지급하겠으나, 추가 비용은 줄 수 없다고 맞섰다.
A 씨는 삼성전자 측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도 이명과 통증 등 일상에서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며 “주기적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피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회사 얘기를 곧이곧대로 들어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병원이 진단한 A 씨 병명은 메니에르병이다. 먹먹함, 저음 난청, 이명, 어지럼증을 동반한다. 학계에서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증세가 장기화하거나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A 씨는 “회사가 손해배상 금액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조정을 하면 될 일”이라며 “회사는 합의가 안되면 다툼의 여지가 있는 거라고 하는데,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부담스러워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채 대응을 못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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