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짐승의 정체를 찾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는 항상 인기있는 주제입니다. 특히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진 듯합니다. 만약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면 성경이 증명해 줄 것입니다.
짐승의 표와 베리칩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면, 무엇이 정말 짐승의 표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면 분명 이번 호가 많은 유익이 될 것입니다.
베리칩이 짐승의 표인가?
베리칩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보면 그것이 정말 짐승의 표 같지만 진짜 짐승의 표를 알지 못하도록 사탄이 꾸며낸 연막전술이라는 생각을 해 보지는 않으셨는지요?
단순히 해석의 차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이 결정되는 문제인데 너무 쉽게 단정 짓고 대중이 이끄는 데로 따라가지 말고, 정말 그것이 짐승의 표인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구원받아야 할 소중한 영혼이기 때문에 왜 아니라고 하는지, 진짜 짐승의 표는 무엇인지 이 시간 충분한 탐구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건강보험법을 기억하십니까? 2014년까지 미국의 수천만 명의 무보험자들에게 보험 혜택을 주도록 하는 이 보험법이 지금은 사실상 유명무실됐습니다.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을 폐지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지요. 이 건강보험법에는 “RFID”란 베리칩에 관한 항목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짐승의 표]인가 라는 문제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왜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컴퓨터나 베리칩이라고 생각할까요? 그것은 성경적 질문의 답을 성경 밖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많은 자료 영상을 보면 이미 베리칩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회사의 직원들, 그리고 환자들, 많은 아이들도 부모의 권유로 받았고 개, 고양이도 베리칩을 받았습니다.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면 자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받은 아이들도 짐승의 표를 받았기 때문에 유황불로 태움을 당해야 할까요? 주인에 의해 개/고양이도 짐승의 표를 받았다는 것일까요?
[짐승의 표]라고 검색해보면 수많은 의견들이 나옵니다.
“짐승의 표는 상품에 그려진 바코드이다.”
“짐승의 표는 앞으로 발행될 세계적인 신용카드이다.”
“짐승의 표는 세계를 통제할 정부의 컴퓨터 번호다”
“짐승은 벨기에에 있는 슈퍼 컴퓨터이고 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666이란 숫자이다”
지금은 이렇게 믿는 사람이 없으나 예전에는 짐승의 표에 대해 기독교에서 이러한 가르침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짐승의 표는 베리칩이다.”
이제까지 짐승의 표에 대해 수많은 추측들이 있었으나 모두 빗나갔고 근래에는 베리칩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는 듯합니다. 베리칩이 하나의 통제수단으로 사용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신용카드를 사용하듯이, 베리칩 하나로 매매하는 시스템을 통일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 자체가 짐승의 표는 아닙니다. 짐승의 표에 대한 사람의 이해는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나 성경에서 제시하는 짐승의 표는 한 번도 변한적이 없습니다.
1. 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 다니엘서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지요. 하나님은 그에게 로마의 멸망이 포함된 마지막 시대의 사건들을 계시로 보여주시고 기록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로마가 알아보고 손상하지 못하도록 상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중국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시고, 여러분은 중국경찰이 그 내용을 알기를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쓸까요? 암호로 쓸 것입니다.
천사는 요한에게 초기 기독교인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사용해서 편지를 쓰도록 지시했습니다. 그것은 로마가 갖고 있지 않는 것, 곧 성경입니다. 그런데 요한과 7교회는 예수님과 바울이 사용하던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구약성경이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회가 계시록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구약성경을 멀리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신약성경 시대의 기독교인이라 부르면서 성경 전체를 사용하지 않고 그 암호를 해독하려고 합니다.
계시록은 진실로 성경 전체의 요약입니다. 계시록은 구약성경 39권 중 26권의 책에서 인용되었고 계시록의 404절 가운데 267절은 다른 성경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상징적 예언들을 풀기 위해서는 구약성경, 특별히 다니엘서의 예언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다니엘서의 예언들을 알지 못하면 짐승의 표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니엘서의 몇 예언들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2. 다니엘서에서 찾는 짐승
짐승의 정체를 알아야 짐승의 우상과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에서는 미래의 어떤 독재자가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이 짐승이나 적그리스도가 과연 누구인가에 관해서 많은 설들이 있었습니다. 2차 대전 중에는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적그리스도로 지목되었고 J.F케네디나 헨리 키신저,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그리고 요즘엔 오바마가 적그리스도라는 설들이 대두됩니다.
1) 다니엘 2장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단 2:31-35)
이 꿈은 느부갓네살부터 세상 끝까지 있을 사건들의 표상이었습니다.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단 2:38-40)
다니엘은 신상의 각 부분은 세계를 지배할 나라들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느부갓네살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 다니엘에게 그 첫째 것은 느부갓네살의 바벨론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현재 우리는 그 신상의 여러 부분들이 어떤 나라들이었는지 역사를 통하여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은 B.C. 539년에 메대 페르시아에게 정복당했고,
메대 페르시아는 B.C. 331년에 그리스에게 정복당했고,
그리스는 B.C. 168년에 로마제국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단 2:41)
다니엘은 로마제국 이후에 나라들이 나누일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오늘날 기독교는 발과 발가락을 잘라내어 먼 미래의 언젠가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라낼 어떤 성경적 근거도 없습니다.
“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단 2:44,45)
우상의 발을 친 돌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열 발가락 시대에 살고 있는데 다음 사건은 예수님의 재림인 것이지요.
2) 다니엘 7장
다니엘서 7장은 다니엘서 2장과 같은 시대의 예언을 다른 모양으로 중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단 7:1-7)
다니엘은 바다로부터 올라오는 네 짐승을 보았는데 순서대로 사자, 곰, 표범 그리고 도저히 어떻다고 묘사할 수 없는 무섭고도 지독한 짐승이었습니다. 이 네 짐승은 바로 다니엘서 2장에서 나온 네 나라를 상징하고 그 힌트를 17절에 주셨습니다.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단 7:17).
그렇다면 이 네 나라가 다니엘 2장의 신상의 부분들과 어째서 같을까요?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단 7:23)
자, 그러면 다니엘 2장과 7장에서 이 넷째 나라에 대한 말씀을 읽어봅시다.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단 2:40)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단 7:7)
이 둘의 공통점을 보십시오. 이 두 표상들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의 예언 해석에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로마제국이 분열되어 오늘날의 지구촌의 모습이 된 것을 다니엘 2장에서는 발과 발가락으로 상징되었습니다.
다니엘 7장에 보면 똑같이 열 나라로 분열되는데, 그것이 열 뿔로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서 24절을 보면,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단 7:24). 분명히 로마제국의 붕괴에 대한 말입니다. 그런데 2장과 다른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단 7:8)
바로 이 작은 뿔이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다니엘 2장의 열 발가락과 7장의 열 뿔을 먼 미래로 던져버리면 작은 뿔, 즉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알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탄이 노리고 있는 연막전술인 것이지요.
3) 다니엘 8장
이 작은 뿔을 연구하기 전에 다니엘서 8장을 간단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이상 후 벨사살 왕 삼년에 다시 이상이 나타나니라 내가 이상을 보았는데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 몸은 엘람도 수산 성에 있었고 내가 이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니라 내가 눈을 들어본즉 강 가에 두 뿔 가진 수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어도 한 뿔은 다른 뿔보다도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내가 본즉 그 수양이 서와 북과 남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능히 구할 이가 절대로 없으므로 그것이 임의로 행하고 스스로 강대하더라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수염소가 서편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그것이 두 뿔 가진 수양 곧 내가 본 바 강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내가 본즉 그것이 수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수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능히 수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이가 없었더라 수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단 8:1-9)
자, 이것이 다니엘서 2장과 7장에서 본 것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이 양과 염소는 다니엘 2장의 신상과 7장의 짐승과 같은 것이다.
다니엘서 2장에서 어떤 나라가 바벨론을 정복했습니까? 메대 페르시아입니다. 그럼 어떤 나라가 메대 페르시아를 정복했는지요? 그리스입니다. 이제 여기 양과 염소에 대한 성경 자체의 해석을 보기로 합니다.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수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단 8:20,21)
참으로 놀라운 성경의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 예언이 우리 운명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실을 놓치지 않도록 다니엘서에 세 번씩이나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언들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만 이 짐승의 표에 관해서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제2부 성경이 알려주는 짐승의 특징
1. 다니엘서에서 찾는 적그리스도
첫 번째 질문
-다니엘서 8장의 이상에서는 왜 메대 페르시아부터 시작하셨을까요? 벨사살 왕이 술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벽에 손이 나타나 기록한 이야기를 기억하시죠? 바로 그날 밤 메대 페르시아군이 유프라테스 강을 통해 바벨론으로 들어와 성을 정복하고 벨사살 왕을 죽이게 됩니다.
바벨론이 정복당할 그 즈음에 이 표상이 주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시작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그 다음 세계제국인 메대 페르시아부터 시작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
-넷째 왕국 로마는 어떻게 됐을까요? 7장에서 본 것처럼 작은 뿔은 로마를 상징하는 무서운 짐승의 머리 위 열 뿔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8장의 작은 뿔은 셋째 짐승 그리스 뒤를 이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7장의 넷째 나라 로마를 이어서 자라난 이 작은 뿔이 실제로 8장의 넷째 왕국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해 로마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작은 뿔의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의 뒤를 이어 계속 존재하고 있는 이 작은 뿔이 누구일까요?
“로마 황제들의 왕위 계승하는 자리에 로마 교황이 계승되었다. 콘스탄틴 황제가 로마를 떠날 때 그는 그의 지위를 교황에게 물려 주었다.”(로마대학 라반스 교수)
“교황들은 그들의 권력과 위신과 칭호들을 이교로부터 상속받아서 로마의 비어 있는 황제들의 자리를 채웠다.. 교황권은 죽은 로마 제국의 무덤 위에서 왕관을 쓰고 앉아있는, 그 죽은 제국의 유령이다.”(Stanley’s History p.40)
교황 로마가 로마제국의 자리를 취했기 때문에 교황 로마가 다니엘 7:24,25절의 작은 뿔에 대한 묘사에 맞아야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25절에 나타난 4가지만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단 7:25)
넷째 왕국인 로마의 자리를 차지한 세력은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뿐만 아니라 육의 장막 속에 가리워진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이다. 교황이 말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는 것이다.”(1895년 7월 13일 Catholique National).
카톨릭의 훼라리스 교회사전에 보면, “교황은 대단히 존엄하시고 지극히 높임을 받으셨음으므로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또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다.”(Ferraris’ Eccl. Dictionary Catholic).
2).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단 7:25)
교황권이 약 1억 명의 개신교도들을 살해한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3).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단 7:25)
때는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안식일을 태양의 날인 일요일로 변경했습니다.
질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질문: 왜 우리는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우리는 카톨릭교회가 토요일로부터 그 신성성을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에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킨다.
(Peter Geiermann, The Con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Rockford, IL: Tan Books, 1977), 50; 회심자를 위한 카톨릭 교리문답서, 베드로 가이엘맨, p. 50. 1977).
어느 국가의 어떤 법을 바꾸었습니까?
절대 폐해지지 않을 하나님의 법 십계명 중 두 번째 계명을 바꾸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변경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전, 즉 개신교회가 존재하기 전에 카톨릭 교회가 하나님의 법의 심장부를 공격하여 이루어졌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온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 5장에서 하나님의 법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일획이라도 변경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4).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단 7:25절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지나쳐 버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기간을 7번이나 언급하셨습니다. 다니엘서의 한 때 두 때 반 때는 계시록에 다시 등장합니다.
“때”라는 히브리어는 “년, 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 때는 1년이고 두 때는 2년이고 반 때는 반년입니다. 성경에서 한 달은 30일로 계산합니다.
한때=1년=360일
두때=2년=720일
반때=반년=180일
합 1,260일
예언을 해석할 때, 1일=1년이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민 14:34절과 겔 4:6절). 그렇다면 교황 로마가 전 세계의 권력자로서 통치를 시작한 해는 A.D. 538년이고 1260년 동안 다스리고 1798년 2월에 교황이 나폴레옹 군대의 버티어 장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됨으로 1260년간 교황의 통치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교황 로마는 다니엘서에 예언된 바로 그 작은 뿔입니다. 여러분은 이 조건에 맞는 다른 대상, 다른 세력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앞으로 될 일을 내다보시며 우리에게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성경에 예언해 놓으셨는데 아무리 성경에 명백히 기록해 놓으셨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예언을 먼 미래에 있을 어떤 사건이라며 무시해버린다면, 여러분은 짐승의 표를 받게 될 수 있습니다.
2. 계시록에서 찾는 짐승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 지구상의 인구는 두 부류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짐승의 표를 받는 무리와 세상과 분리되어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무리들입니다.
우리는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먼저 계시록에 나오는 그 짐승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1) 계시록 12장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계 12:1)
오늘날 일반적으로 모든 신학자들은 ‘여인’은 교회를 상징하는 데 동의합니다. 순결한 여자는 순결한 교회이고, 불순한 여자는 배도한 교회이지요. 따라서 12:1절의 여자는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뜻합니다.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계 12:2-5)
여기서 아이의 출산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9절에서 용은 사탄이라고 설명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태어나자마자 죽이려고 했습니다.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의 모든 남자아이를 죽인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6)
다니엘서 7장에서 ‘작은 뿔’에 대해 공부했을 때, 교황권이 1260년 동안 통치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여기 계시록 12장에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1260년 동안 교황권의 핍박을 피해 여기저기 도망갈 수밖에 없었음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계 12:13,14)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교황의 통치 기간인 1260년을 의미하고 단 7:25절의 기간과 똑같은 기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우리가 실수하지 않도록 똑같은 예언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많은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는 바로 그때에 그의 남은 자손은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2) 계시록 13장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계 13:1,2)
바다에서 올라오는 이 짐승은 그보다 먼저 세상을 통치한 나라들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단 8장에서 ‘작은 뿔’이 넷째 왕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짐승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넷째 왕국, 즉 교황 로마입니다. 따라서 계 13장의 짐승은 누구일까요? 바로 로마 교황권입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계 13:3)
이것은 정확하게 1260년 끝인 1798년에 나폴레옹의 군대에 잡혀가서 옥사한 교황에 대한 언급입니다. 그런데 상처가 나았습니다. 그것은 무솔리니가 1929년 2월 1일 라테란 조약으로 교황을 다시 로마에 복위시킨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른다고 했지요. 오늘날은 카톨릭 신도만이 교황을 정신적 지도자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따르고 있습니다. 어느 대통령, 어느 왕보다도 더 강력한 절대 군주적인 영향력과 힘을 가지고 있음을 온 세상이 인정합니다.
제3부 성경이 알려주는 짐승의 표와 하나님의 표
1. 짐승의 표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계 13:4,5)
“마흔 두 달” 이 42달은 이미 익숙하게 들어왔던 기간입니다.
단 7장의 “한 때, 두 때, 반 때” 계 12장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와 “1260일” 이것이 계시록 13장에서는 ‘42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기간은 다 같은 기간이고 같은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계산법인 한 달= 30일에 근거해 40개월=1200일, 2개월=60일, 합 1260일입니다.
예언은 이렇게 분명한 것입니다. 계 13장의 짐승은 교황권이 아니고 다른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드디어 짐승을 알았으니, 그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에 성경에서 답을 찾아봅시다.
1) 66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계 13:16-18)
짐승은 교황권이라고 성경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이 짐승, 교황권의 수가 666이라고 했는데 666이 짐승의 표입니까?
666이란 숫자는 단순히 짐승이 누구인지를 식별하는 하나의 특징일 뿐입니다.
카톨릭 잡지 Our Sunday Visitor 1915년 4월 18일자에 “교황의 삼층관에 쓰여진 글자는 ‘VICARIUS FILII DEI’ 라는 라틴어인데, 이는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라는 뜻이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대신하는 대리자가 아니고 예수님의 대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황은 예수님을 대신하는 대리자라는 것이지요. 그 참람된 이름의 뜻을 숫자로 계산하면, [표] 666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들이 이렇게 완전하게 다 들어맞는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요?
루터, 위클리프, 후스 그 외 종교개혁자들은 한결 같이 계시록의 짐승을 교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카톨릭 교회가 로마와 프랑스로 40년 이상 나누어져 대립적인 두 교황들이 있었을 때 각 교황은 서로 상대에게 적그리스도라고 하였으나 존 위클리프는 그들 둘 다를 적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예언은 교황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예수회 사제들에게 교황에 대한 압력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계시록의 짐승에 관한 모든 예언을 먼 미래의 것으로 돌려, 적그리스도가 장차 예루살렘에 즉위하여 문자 그대로 3년 반을 다스리게 될 독재자라고 가르쳤습니다.
카톨릭 교회가 교황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낸 미래주의 신학이 오늘날 개신교회와 카톨릭 교회에서 다같이 가르쳐 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동안 진짜 계시록의 짐승은 그의 어깨너머로 바라보면서 웃고 있습니다. 만약 역사적으로 계시록의 짐승이 교황권이라면 현재나 미래의 짐승도 교황권이어야 합니다.
계 17장에서는 이 짐승을 큰 음녀 바벨론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바라보며 누가 짐승이나 적그리스도가 될 것인지를 알아맞히는 점쟁이 역할을 해왔으나 사람들이 점찍은 적그리스도는 수도 없이 바뀌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실제 짐승은 살아있고, 매우 강력하게 현재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카톨릭 신자를 포함해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카톨릭 신자를 포함해 우리 모두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카톨릭 신자들은 짐승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있는 사람들에게,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고 그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2) 무엇이 그(짐승)의 표인가?
짐승의 표, 교황권의 표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짐승이 죽이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짐승에 의해 수 천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교황권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문당하고 화형당한 것을 기억합니다. 짐승이 이런 일을 우리 시대에 다시 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계 14:9,10)
이제 그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12절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짐승의 표는 경배, 순종과 관계 있습니다. 12절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말했으므로 그 표를 받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를 거절하는 자입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사탄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최후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짐승은 단지 사탄이 사용하고 있는 매개체일 뿐입니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짐승)에게 주었더라”(계 13:2). 사탄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습니다. 짐승은 교황권이며 그 표는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표가 과연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짐승 스스로가 짐승의 표, 즉 교황권의 표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습니다.
“일요일은 우리의 권위의 표이다. 카톨릭 교회의 권위는 성경보다 높으며, 안식일을 주일로 옮긴 것이 그 사실에 대한 증명이다.”(Catholic Record, London, Ontario, Sep.1,923).
지금 여러분이 주일에 교회를 간다고 해서 그것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그것이 짐승의 표로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일요일이 짐승의 권위의 표이지만 그것을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아무도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인지 시험하는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요일에 교회에 가도록 하는 도덕적 강제법령이 세워진다면, 그것이 짐승의 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깨달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이 언제인지 크게 외치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교회에 가고 하나님을 믿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강압적인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수 천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교황권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문당하고 화형당한 것을 기억하는지요?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니라 강요에 의한 것이요 죽음의 협박 앞에서 하는 마지못한 선택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표
만약 일요일이 짐승의 표라면, 하나님도 역시 표를 가지고 있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표도 있습니다.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2)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겔 20:20)
안식일이 하나님의 표인 이유는 그 계명만이 누가 참된 하나님인지를 밝혀주는 계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안식일은 누가 하늘에 계신 참된 하나님이신지를 밝혀주는 표징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만물의 창조주임을 증명하는데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조의 기념일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오직 안식일 계명만을 통해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안식일은 사람이 우상숭배를 금하도록 하기 위해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고 하나님의 참된 경배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계명입니다.
기독교의 대다수 사람들이 하나님의 표가 무엇인지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짐승의 표가 될 주일을 성수합니다.
감리교회: “주일 중 첫째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대한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없다”(감리교회 신학 개요, Theological Compend, Binney, p.181).
장로교회: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이 그러한 명령을 전혀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의 명령이라며 일요일 준수 전통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 우리가 성경을 최상의 권위로 인정한다면, 안식일 준수자들이 진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Christian at work, Apr. 19, 1883).
D.L 무디: “안식일은 에덴에서 지켜졌고 그 후 계속해서 지켜져 왔다. 이 넷째 계명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돌비에 율법을 쓰셨을 때 안식일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한다. 어떻게 사람들은 다른 아홉 계명들은 아직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 한 계명은 폐지되었다고 주장 할 수 있는가?”(Dwight Lyman Moody, Weighed and Wanting, p.47)
성공회: “성경의 계명은 일곱째 날에 쉬라고 한다. 그것은 토요일이다. 성경 어느 곳에도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정해진 곳은 없다”(Phillip Carrington, Toronto Daily star, October 26, 1949).
제4부 성경이 알려주는 짐승의 우상
1. 짐승의 우상
짐승의 표가 설명된 계 13장에 의하면 짐승의 표를 강요하기 전에 짐승의 우상이 먼저 세워집니다.
사람들은 짐승의 표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있으나 짐승의 우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이 짐승의 우상은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죽이는 일을 한다고 15절에서 설명합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계 13:11,12)
이 짐승은 교황권을 언급하는 첫 번째 짐승과는 다른 짐승인데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면서 교황권에게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경배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교황권의 행동대장, 이 새끼 양 같은 짐승은 누구일까요?
첫 번째 단서는 그것이 땅에서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짐승인 교황권은 바다에서 올라왔지요. 바다는 많은 백성들을 뜻합니다. 즉 인구가 밀집한 유럽에서 일어났으나 새끼 양같은 짐승은 아직 정착되지 않은 땅에서 올라왔다는 의미입니다. 개신교가 교황의 박해를 피해 이주한 아메리카 대륙 즉 미국입니다. 이 세상 역사에서 이처럼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이 성경에 예언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믿기 어렵지요. 두 번째 짐승은 단순히 미국이 아니라 개신교의 세계적 지도자로서의 미국입니다.
이 새끼 양같은 짐승은 참된 개신교회가 아니라 배도한 개신교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12절에서 이 새끼 양같은 짐승이 세상의 모든 이들로 하여금 교황권을 경배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읽었습니다.
계 17:5절에서는 교황권을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했고 그녀가 낳은 딸들은 배도한 개신교를 의미합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계 13:13)
13절은 오늘날 배도한 개신교회에서 행해지는 거짓 성령운동, 즉 각종 기적, 치유, 환상 등을 의미합니다.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계 13:14)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 즉 교황권을 위하여 우상을 만듭니다.
우상은 무슨 물체나 신상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image 유사함, 즉 교황권을 닮은 또 하나의 형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교황권의 어떤 모습을 닮은 우상일까요? 그것은 1260년 동안 피에 취했던 교황권처럼 배도한 개신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동일한 핍박을 행한다는 설명입니다. 이미 짐승의 우상은 세워져 있고, 마지막 행동 직전에 있습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5-17)
쇳덩이나 돌덩이 같은 우상이 말한다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권위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배도한 개신교회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함으로써 교황권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미국과 같은 자유로운 나라에서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마커슨(A.J. Marcussen)의 국가적 일요일 법령 The National Sunday Law 52,53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주일 동맹의 회장이 전국적인 TV 화면에 나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 “만약 어떤 사람이 일요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죽임을 당할 것입니까?”
회장: “그것이 바로 제가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을 건국 당시의 이념으로 돌이켜야 한다고 거센 입김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는 천주교와 기독교의 유권자들의 표에 따라 좌우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가야 한다는 미국의 건국 당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죠지 밴드맨(George Vandeman)의 적그리스도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Antichrist, 1986, pp 59,60)
“청교도들은 미국 해안에 닿자마자 엄격한 일요일 법으로 그들 자신의 시민들조차 억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가난한 사람이 연못에 빠져서 옷을 말리느라 일요일 예배에 불참하였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를 채찍질했다. 존 루이스와 사라 채프맨 두 남녀는 일요일에 사과나무 아래에 함께 앉아있었다는 이유로 법정에 기소되었다.”
“미국에서 종교는 그들의 전부였다. 주 정부는 교회의 일부이고, 정책은 신학의 일부이며, 시민의 자격은 교인의 특권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으로 청교도 사회는 관용이 없고 박해자의 투쟁 정신이 팽배했다.”(모지스 C. 타일 Moses C Tyler, 식민지 동안의 미국 문학의 역사 A History of American Literature During the Colonial Time, 1권 p.90)
“초기의 미국 일요일 법은 정말로 무서웠다. 1610년 버지니아 법은 일요일을 범하였거나 아침 저녁의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범행에는 그들의 주당 식량과 급여를 잃고, 두 번째는 그들의 급료를 잃음과 동시에 공적으로 채찍질을 당하고, 세 번째는 사형을 당해야 했다.”(적그리스도의 흥망 The Rise and Fall of Antichrist, 61).
미국은 교황권의 행동대장으로서 한 가지 일을 완성하기 위해 힘을 다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보수파는 현재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도덕적 타락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상황이 대단히 악화되었으므로 악의 조류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이 일요일에 교회에 가도록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을 법률화하기 위해 사람들을 일요일마다 교회로 가도록 강요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명분입니까!
도덕적 가치를 법률화하게 되면 개신교는 과거에 교황이 행사했던 것과 똑같은 박해의 권한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조만간 미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공할 만한 박해의 장면을 보게 될 것이고 그 박해는 전 세계적입니다. 어떠한 파시즘보다 더 무서웠던 중세 교황권이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위기입니다.
중동의 전쟁이 계속된다면 연료 고갈이 일어날 것이고 이것은 식량 전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경제공황뿐 아니라 온역이나 핵전쟁, 천연재해들도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위기와 두려움이 강력한 지도자로 하여금 도덕성을 법률화하게 합니다. 국가적인 일요일 준수법령은 바로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도덕성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나 강요된 도덕성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교회 출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나 강요된 교회 출석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강압적이거나 강요하지 않듯이 우리 또한 복음을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성령의 임재와 깨닫게 하심이 있을 때, 호소가 있을 때 우리는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치면서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계시록 13장의 짐승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교황권이며 안식일을 일주일 중 첫째 날인 일요일로 변경하였고 온 세상이 놀랍게도 그 짐승을 따르고 있습니다.
계시록 13장의 짐승의 우상은, 항의하기를 멈추고 개신교회라는 이름을 버리며 다시 짐승에게로 돌아간 배도한 개신교회를 의미합니다. 중세 교황권에 맞서 싸웠던 항의자, 대항자라는 뜻의 개신교의 이름이 무색합니다. 더 이상 개신교가 아니라 음녀의 딸입니다. 짐승의 우상인 배도한 개신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하고, 거짓 안식일을 지키게 할 것이며, 거절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설 것입니다.
교회가 성도들을 죽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이단자라는 누명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은 승리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하다면 그 승리자의 무리에 여러분이 서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비웃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화를 낼 것이나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 안식일을 깨닫고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많은 사람의 구원은 우리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예언적 경고들을 우리가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베뢰아 인들처럼 성경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 위해 나갈 때, 자기를 지나쳐 버리고 간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감히 견딜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여러분의 결정이, 곧 다가올 장래에 짐승의 표를 받을 것인가 아닌가 하는 선택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시 119: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