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환경 문제에 필요한 '진짜' 태도
에디터의 노트
분야를 막론하고 환경 문제를 다뤘을 때 결국 지지를 받고야 마는 의견이 있죠. '역시 인간이 문제야...' 자조적인 성찰이긴 하지만, 흘려듣기 힘듭니다. 실제로 지구상에 환경오염 문제를 낳는 주체는 인간이며 이를 제지하거나 개선할 가능성을 그려보는 일도 쉽지 않으니까요. 사실 환경오염은 굉장히 희한한 개념일 수도 있죠. 외계인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야,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스스로 자기 환경을 망치는 습성이 있군!"
지구는 '인류의 시대'
오늘날 지구 시스템과 환경 문제를 이야기할 때 자주 쓰이는 용어가 있다. 바로 '인류세'(Anthropocene)다. 이는 노벨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대기 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0년 국제환경회의에서 현 지질연대를 바꿔 부르자며 제안한 말이다. 지구의 나이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는 지질연대는 크게 대(Era), 기(Period), 세(Epoch), 절(Age)로 나뉜다. 현재 국제 지질학연합(IUGS)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지질연대는 아직 홀로세(Holocene)다. 한 세가 이동하는 데는 수백에서 수천만 년까지 걸리며, 홀로세가 시작된 지는 현재 약 1만200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연대명이 뜨거운 호응을 얻는 이유는 크뤼천이 제안 당시 가졌던 문제의식과 같다. 이미 지구 시스템은 홀로세와 다른 시기를 맞이했으며, 그 이유는 인류의 영향 탓이라는 것이다.
인류세는 그리스어로 '인류'를 뜻하는 '안트로포스'(anthropos)에 '최근의 시간'을 나타내는 지질학적 시대 구분 용어 '-세'(-cene)를 결합한 말이다. 쉽게 '인류의 시대'로도 표현할 수 있을 이 말이 가리키는 것은 지구 시스템이 인류의 영향 아래 놓였다는 현실 인식이다. 바꿔 말하자면 인류가 끼친 영향이 그간 지질연대 구분의 기준이 됐던 소행성 충돌이나 화산 폭발, 빙하기와 맞먹을 정도로 크다는 얘기다. 그 시간을 비교하면 오히려 수백, 수천 분의 1에 불과하다.
지구의 나이로 볼 때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홀로세와 인류가 지구를 장악한 인류세가 차지하는 시간을 비유한 그림. 실제 산술적으로 비교하면 각각 선 하나, 점 하나의 시간도 차지하지 못한다.인류세의 기점은 언제일까?
인류세의 시작점을 언제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시기마다 인류가 지구에 끼친 영향이 명료하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전통적인 인류 문명사 관점에서 볼 때 각 시기가 인류 발달의 '티핑포인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크게 네 가지 기점이 있다.
첫 번째는 농경의 시작으로, 시기상 1만2000년 전까지 거슬러 오를 수 있다. 인류의 농경과 산림 벌채로 다양한 생물이 멸종하고 생지구화학적 순환 과정이 바뀌는 등 지구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왔기에 인류의 농경을 인류세의 기점으로 보는 시각이다. 두 번째는 15세기 후반 흔히 '콜럼버스 교환'으로 불리는 대륙 간 이동이다. 유럽인이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 제도에 도착하고 서구 문명이 급속도로 팽창하며 인간과 함께 여러 동식물이 이동, 생물종 변화가 활발했던 시기다. 세 번째는 산업혁명이 시작한 18세기를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보는 시각이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화석연료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탄소 배출량이 급증했고, 이로 인해 지구 시스템이 결정적으로 변화했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는 세계 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 산업화와 인구폭발 등이 급격히 이루어진 '대가속'(the Great Acceleration) 시기가 직접적인 인류세의 시발점이라는 주장이 있다.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 인류에 의해 생성된 폐기물인 '기술화석'(technofossil)이 발생했으며, 당시 벌인 핵실험이 초래한 낙진이 인공 방사성 물질을 토해내며 지구 토양 성분을 변화시켰다는 게 근거다. 지구에 직접적인 큰 영향을 끼치는 힘을 드러냈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우리는 그동안 '환경'을 제대로 보고 있었을까?
'인류세'가 호명되기 전에도 환경보호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고 환경오염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역시 지적돼왔다. 이대로라면 결국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인지 문학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디스토피아의 단골 원흉으로 환경오염이 그려지기도 한다. 한술 더 떠 지구를 '구원'하고자 어떤 식으로든 '인류 청소'가 시도되는 상황마저 친숙하다. '말도 안 돼!'라며 개연성에 딴지 거는 이는 드물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오면 환경 문제에 대한 인간의 몰입도는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일어날 개연성에도 공감하면서 그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미래를 그리는 데 친숙하다. 남 얘기이거나, 그래도 되는 것처럼. 마치 나심 탈레브의 '흑조 이론'처럼 환경오염으로 초래될 수 있는 거대한 재앙에 대해서는 막연히 불확실한 사건으로 우려하면서도 이를 부를 확실한 '전조'인 인간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뚜렷이 인지하지 못한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이러한 '몰입 저하'를 환기하는 몇 가지 잘못된 믿음이 있다.
첫 번째,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지구의 상태를 눈에 띄게 호전시키거나 환경오염을 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낙관이다. 그러나 '녹색 지구를 만들어요' 같은 제안은 오늘날 그대로 실행하기 힘들다. 이미 못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기술이라는 조력자를 업고 아직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무슨 재간을 부린들 돌아오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 지금 지구는 20세기 100년 동안 500종 이상의 육지 척추동물이 사라졌다는 '여섯번 째 대멸종'을 겪고 있다. 비슷한 수의 종들이 또 멸종할 것으로 내다보는 기간은 보다 짧은 향후 20년 동안이다.
뒤로 물러나 모든 것을 혼란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고자 희망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우리가 지구 시스템에 초래한 혼란 중 일부는 현재 되돌릴 수 없으며, 그로 인한 영향은 수천 년간 지속될 것이다. — 도서 <인류세>, 클라이브 해밀턴, 90쪽.
두 번째, 엄밀히 말해 오늘날 진정한 의미의 '자연'이나 '야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인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많은 과학자나 환경학자들이 오늘날 환경 문제에 필요한 접근방식을 거론할 때 환기하는 이야기다. 재임스 매키넌의 자연환경 에세이 <잃어버린 야생을 찾아서> 역시 이러한 관점을 잘 표현한다. 소위 '자연을 느끼러 간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숲이나 정원, 심지어 식물이 많은 테마 카페로 향한다. 가서 '음, 자연의 맛이야'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농촌이나 바다, 산으로 향한들 이들 모두 정도나 의도의 차이일 뿐 모두 인간의 손길이 닿은 산물이다. 사실상 인간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은 현재 지구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미 인간의 갈망이나 희망, 또는 로망을 담은 '관념어'가 돼버린 게 아닐까?
'자연'일까?
도서 <휴먼에이지>의 저자 다이앤 애커먼 역시 비슷한 점을 지적한다. 그것이 "계획이든 실수이든 모든 지구 시스템은 인간과 얽혀 있으므로" 자연이나 야생이라기보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만든 세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연 보호'나 '생태계의 균형을 맞춘다'는 전통적 관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 보호하는 '자연'은 언제나 생태계 또는 지구 시스템 전체를 가리키지 않았다. 보호는 선택적이었다. 어떤 동물은 '유해'하므로 죽고, 어딘가의 숲이나 습지는 '개발'을 위해 없어진다. 인간이 맞추려는 '생태계의 균형'의 중심에 있는 것은 언제나 인류였다.
똑똑! '인간이 사라진 지구'에 대해 논픽션으로 접하고 싶다면 앨런 와이즈먼의 책 <인간 없는 세상>을 추천해요.
인류세의 진정한 의미
지구는 현재 인간의 행성이다. 우리는 숲을 그대로 둘지 베어낼지, 판다가 생존할지 멸종할지, 강이 어디로 어떻게 흐를지는 물론 대기의 온도까지 결정한다. ... 이런 시대는 여태껏 없었다. — 도서 <인류세의 모험>, 가이아 빈스, 14쪽.
2019년 5월21일 인류세에 대한 지질학계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발표에 앞서 인류세실무그룹은 두 가지를 표결에 부쳤다. '인류세가 지질학·층서학적으로 실재하는가?' '1950년대를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가?' 두 안건 모두 위원 34명 중 29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인류세실무그룹은 인류세를 정식 지질시대로 인정하자는 내용의 제안서를 2021년까지 국제층서위원회에 전달하기로 결의했다. 이 제안서가 국제층서위원회와 국제지질학연합에서 통과되면 인류세가 공식화된다. 인류의 이름이 지질연대표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 구분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다. 인류세는 지질연대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에 있다. 인류세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인 클라이브 해밀턴은 "지구 시스템 기능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자연의 거대한 힘들과 겨룰 정도가 되었다"는 말로 인류세의 의의를 설명한다.* 그 반대편에는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신봉하는 에코모더니스트(ecomodernist)들처럼 인류세를 '인류가 주인공인 시대'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그들은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태양광을 차단하는 에어로졸을 대기중에 살포해 온도를 낮추는 식으로 기술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류세'가 인간의 막강한 영향력에 뿌듯하라고 등장한 이름은 아니다. 오히려 이대로 가다간 인류 손에 지구 시스템이 결딴날 수 있다는 경고 문구에 가깝다.
문제는 인간중심주의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충분히 인간중심주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도서 <인류세>, 클라이브 해밀턴, 78쪽.
클라이브 해밀턴은 이를 위해 필요한 인간의 태도로 '신인간중심주의'를 주창한다. 이는 앞서 짚었던 '인류세' 개념의 출현 배경 및 의미와도 연결된다. 인간이 지닌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자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히 아는 것이 환경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신인간중심주의적 태도다. 이는 자연환경을 필요에 따라 이용가능한 자원으로 보는 기존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난다. 기존 인간중심적 사고에는 인간이 자연환경에 끼치는 영향과 그로 인해 자연환경이 인간에 가할 수 있는 제한 모두 염두에 없다. 주인의식 없이 쓰기만 할 뿐이다. 이에 반해 인간이 자연환경에 초래할 영향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며 행동하는 것이 그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인간중심주의적 태도다.
환경 문제를 보는 눈은 어때야 할까?
'잘못된 믿음' 이야기나 해밀턴의 주장을 빌린 것이 단지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아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실질적으로 환경을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되는 '장막'을 걷어내기 위해서다. 이미 인간중심적인 관점에 물들어 관성이 생겨버린 '생태계' '자연' '환경'이라는 말로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진짜 환경을 파악할 수 없다. 이는 오늘날 과학자들이 환경 문제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틀로써 '지구 시스템 과학'(earth system science)을 내세우는 이유기도 하다. 즉 '인류세'는 현재 직면한 지구 시스템의 위기와 인류의 책임을 건드리기도 하지만, 문제를 실증적이고도 통합적으로 사고할 창에 대한 개념을 부여해준다.
* <인류세>, 클라이브 해밀턴, 이상북스, 2018, 6쪽.
환경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인간의 자세지구는 인간과 관계 맺고 있는 유기체다
'인류세'가 출현한 이유를 함축해 설명하면, 인류의 활동이 지구 시스템의 '항상성'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지구 시스템의 항상성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개념은 1972년 제임스 러브록이 제시한 가이아(Gaia) 이론이다. 지구 전체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고, 지구 시스템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및 생명체들의 상호관계에 주목했다. 그러나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은 당시 충분한 근거 없이 과학의 영역에 신화를 끌어왔다는 비난을 받으며 무시당했다. 하지만 지구 전체를 물리, 화학, 생물학적 구성 요소로 파악하고 그 안의 자기조절 시스템에 주목하는 지구 시스템 과학이 발전한 오늘날 러브록의 이론을 무시하는 이는 없다. 과학철학자 브뤼노 라투르 교수는 인류세라는 시대에 인간과 과학기술이 가이아의 자기조절 능력에 생태환경 변화 감시 및 자기인식 능력을 더할 수 있게 됐다는 '가이아 2.0' 이론을 내놓기도 했다. 이를 통해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 및 지구의 자기조절 상황을 봤을 때, 그 연결망인 생물종 다양성이 깨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치 러브록이 지구를 두고 '가이아'라는 유기체를 떠올렸듯 지구 시스템을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 역시 유기적 움직임을 보일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은 거품 속에서 자연을 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국에서 청소년 세 명 가운데 하나는 달걀이 닭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치즈를 식물에서 얻는다고 믿으며, 우유가 젖소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모른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음식이 나오는 곳은 다름 아닌 슈퍼마켓이다. — 도서 <리얼리티 버블>, 지야 통, 16쪽.
환경 문제를 지구 시스템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단지 인간 개인의 이기심이나 몰이해 때문은 아니다. 인류에게 환경이란 결국 인간을 주체로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다. 좁게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리적 상황의 결합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연과 환경을 이해한다는 건 상당한 사고력과 감수성을 수반하는 행위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에 발휘하는 영향은 단지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대기오염은 지구의 온도를 높여 빙하를 녹이고 쓰나미로 돌아오는가 하면,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는 먼 대양을 건너 바다거북의 내장에서 한글 상표와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영향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그 수준의 심각성과 (나쁜 의미에서) 유기적 관계 맺음이 눈에 띄게 가시화된 것이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인류세의 지구다. 이를 이해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일이 인류세의 지구 시스템을 인식한 인류의 자세다.
환경은 더이상 인류의 병풍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에 있어 전통적 관계는 경제, 사회, 환경의 상호보완이었다면, 이제는 환경의 울타리 안에서 가능한 발전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오늘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자는 것은 도덕적 제언이 아니다.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 위원장 브룬트란트가 주도적으로 처음 사용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 다시 말해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보전도 고려하지만,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해야 할 필요도 대등히 강조된다. 이처럼 전통적 의미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경제, 사회, 환경에 대한 고려를 상호밀접하게 동시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관계는 바뀌고 있다. 현재 지구 시스템이 보여주는 상태와 인간 사회 및 기술의 상태를 저울질해 한계를 고려할 때 이대로 어림없다는 게 근거다. 이에 오늘날 지속가능한 발전은 환경을 최우선으로 두고 그 안에서 가능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삶의 프레임을 바꾸지 않으면 생태적 지속 가능성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과학기술이 그 '용량'을 다소나마 늘려주더라도 말이다.
인류세는 사고와 행동의 프레임을 개인이 아닌 인류 차원에 둘 것을 요구한다. 그 준거의 틀이 되는 것은 물론 지구 시스템이다. 인도의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인류세에 들어서 더이상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가 구분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모두 같은 '지구역사'(geohistory)로 엮이게 됐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근대에 주목한 것은 경제 성장과 자유의 성취지만, 이는 모두 화석연료로 대표되는 에너지 사용으로 거둔 결과다. 사회·정치 제도 역시 지구 시스템의 물적 지원과 기반 아래 마련했다는 점에서 인간은 줄곧 지구 시스템의 품 안에서 살아왔으며, 이후에도 그럴 수밖에 없음을 환기한다.
인류의 삶을 실질적으로 꾸리는 분야에서도 환경과의 융합이 필수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2019년 12월 카이스트 인류세 연구센터가 개최한 '국제 인류세 심포지엄'에서는 인류세 해결을 위한 다양한 학문의 융합 필요성을 논의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정치는 인류세 가속을 멈추거나 늦추기 위해 입법, 제도 개선, 투자 등을 논의해 적용해야 하며, 재계는 성장 일변도의 자본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환경중심사고'로의 전환이 가져올 이해타산에 대해 눈 뜰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인류세를 헤쳐나가는 담론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더는 인류가 거품 낀 눈으로 환경 문제를 보지 않도록 길잡이가 돼줄 수 있다.
시작은 눈을 뜨는 일이다. 환경에 대한 주체성을 찾고 지구 곳곳에 벌어지는 상황을 보는 일. 나의 영향을 가늠하고 가능한 실천을 떠올려보는 일. 평소 지나친 누군가의 호소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일. 인류세를 살아가는데 있어 인류는 지구 시스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각이다.
누구도 기후변화에 대해 얘기하지 않아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게 우리의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나쁜 거라면서 어째서 우리는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거죠? 왜 어떤 규제도 없나요? 왜 불법으로 만들지 않나요? ... 모두들 기후변화가 존재론적 위협이며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예전처럼 살고 있어요. 저로선 이해가 안 갑니다. 왜냐면 탄소배출을 멈춰야만 한다면 탄소배출을 중단해야 합니다. 제게는 흑백의 문제입니다. 생존에 있어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 그레타 툰베리, 2018년 11월 TED 연설 일부
인류세의 황금못을 찾아서
에디터의 노트
인류가 지구를 장악한 시대, 인류세.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어떻게 지구 시스템을 주무르기 시작했을까요? 그 결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낳았을까요? 대표적인 시점들을 '황금못' 삼아 지금 '인류세'가 나타나기까지 돌아봅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플린더스 산맥에 에디아카라기 지층을 표시한 '황금못' 사진. ⓒBahudhara via wikimedia commons(BY)
세계 곳곳에는 '황금못'이 박혀있다. 무슨 마왕을 불러오기 위한 의식은 아니다. 세계의 지질연대를 구분하는 국제층서위원회(ICS)는 전 지구적 변화를 인지할 수 있는 지질 기록이 보존된 곳을 표준층서구역(GSSP, Global Boundary Stratotype Section and Point)으로 표시한다. 표식의 모양과 형태가 황금색 못을 박은 것과 유사해 일명 '황금못'(Golden Spike)으로 불린다. 표시된 곳을 조사하면 특정 지질연대의 경계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세'에도 황금못을 박는다면 어디에 박아야 할까? 흔히 그린란드의 녹아내리는 빙하, 멸종 위기에 놓인 바다 산호, 플라스틱이 뭉쳐 만들어진 돌, 어마무시한 닭 소비량이 낳은 닭뼈 화석 등이 인류세의 황금못으로 거론된다. 빙하나 산호는 인류세로의 변화를 잘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쓰인 비유에 가깝지만, 플라스틱 돌이나 닭뼈 화석은 후대 인류가 실제로 지금을 가리키는 황금못을 박아넣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지질학적으로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의 머릿속으로 인류세의 황금못은 '언제'인지 그려보는 일도 오늘날 환경 문제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려보는 데 도움 된다. 오늘날 어쩌다 지질연대의 이름에 '인류'가 붙을 정도로 지구 시스템이 위기에 처했는지 과거를 살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해 인류세의 기점으로 볼만한 시기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어떤 일을 낳았는지 살펴보는 일과 같다.
그럼 우리 머릿속에 인류세의 황금못으로 박아넣을 후보군에 어떤 게 있을까. 바로 고대 농경의 시작, '콜럼버스 교환'으로 대표되는 15세기 대륙 간 이동, 18세기 산업혁명, '대가속'(Great Acceleration)의 시기인 1950년대 이후와 같은 인류사의 주요 기점들이다. 각기 인류세의 시발점으로서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중 15세기 대륙 간 이동은 아메리카 대륙 위주로 발생한 현상이기에 '인류세'를 대변하기에 다소 협소하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서구중심적 시각을 대변한다는 비판이 있어 비교적 입지가 떨어진다. 이를 제외한 농경의 시작, 산업혁명, 1950년대가 인류세의 황금못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들이다.
1만2000~5000년 전 황금못, '농경'
기원전 1200년경 고대 이집트의 초기 농경 모습을 그린 벽화.
인류가 환경을 훼손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일까? 이러한 질문에 100~200년 전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를 이루며 배출한 매연이나 쓰레기, 폐기물 등이 연상돼서다. 그러나 이는 환경오염을 비교적 새롭게 나타난 현상으로 보는 인식이다. 하지만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인류가 지구 시스템에 영향을 가해온 역사는 깊다. 그 첫 흔적은 인류가 정착해서 무리 생활을 시작한 농경의 시작부터 찾아볼 수 있다.
흔적의 지표로 삼을 것은 메탄 가스다. 메탄은 대기 중 양은 많지 않지만 기온상승 효과가 이산화탄소의 16~20배에 달해 온실효과 및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농경의 시작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보는 대표적인 학자는 윌리엄 F. 러디먼이다. 그는 10여년 전 버지니아 대학 환경과학과 교수를 막 그만둘 무렵, 이상한 점을 하나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5000년 전부터 늘어난 대기 중 메탄 농도였다. 역사적으로 대기 중 메탄 농도는 1만2000년 전 정점을 찍는다. 이후 태양 복사에너지의 감소에 따라 함께 하강세를 뗬는데, 5000년 전부터 돌연 반등한 것이다. <홀로세(The Holocene)>라는 책을 쓴 지질학자 닐 로버츠는 5000년 전 시점을 이야기하는 장에 '자연 길들이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5000년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인류가 지구에 가한 환경 훼손과 환경적 영향이 처음으로 대두한 때였다. 농경은 지구상 모든 생물종을 통틀어 인류가 지구 시스템에 영향을 가한 첫 독보적 행위다. '인류' 단위에서 농경이 언제 시작됐는지 연대를 하나로 특정할 수는 없다. 멀게는 1만2000여년 전 서남아시아부터 가깝게는 약 5000년 전 미국 동부에서까지 농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정 시점으로 잘라 말할 수 없기에 인류세의 '기점'으로 농경이 거론될 때 약점으로 지적되는 면이기도 하다. 메탄 농도가 상승하기 시작한 5000년 전은 결국 인류 단위로 보아도 농경 생활이 시작돼, 정착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농경은 인류의 생활 방식과 그 환경적 영향을 바꾸어 놓았다. 농사를 짓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다. 세계 주요 문명이 강기슭에서 번영한 이유기도 하다. 인류는 논농사를 짓기 위해 관개를 시작했고, 물을 대기 위해 인공 습지를 대거 마련한다. 이는 메탄을 대량 발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습지에서 자란 벼나 잡초가 죽고 분해되는 과정에서 메탄이 배출되는데, 이 양이 급증한 것이다. 5000년 전 대기 중 메탄 농도가 갑자기 크게 늘어난 것도 이때 벼농사를 위해 전 지구적으로 자리 잡은 관개가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농경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불태운 삼림에서 발생한 메탄도 공기 중에 더해졌다.
농경뿐 아니라 이를 통해 영위하게 된 인류의 정착생활도 지구 시스템에 영향을 미쳤다. 가축도 농경과 함께 등장했다. 농경을 통해 확보한 잉여생산물은 가축을 기르는 원동력이 됐고, 가축들이 식물 섬유소를 소화해 내뱉는 트림과 배설물을 썩힌 거름을 통해서 메탄이 발생됐다. 동식물을 필요에 따라 기르거나 해친 것은 물론 목초지나 토지를 정리하기 위해 자연환경에 간섭한 결과 자연 식생과 많은 생물종이 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200년 전 황금못, '산업혁명'
과거 자동차가 넘쳐났던 로스엔젤레스에서는 햇빛이 강렬한 오후 2~3시만 되면 엔진에서 배기된 이산화질소(NO2)들이 오존을 생성해 스모그가 발생했다. 이를 '로스엔젤레스 스모그'로 불렀다. ⓒMassimo Catarinella via wikimedia commons(BY-SA)
인류사에서 혁명적인 전환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산업혁명. 이를 촉발한 배경에는 1700년대 화산 폭발로 인한 기후변화가 있다. '소빙기'(Little Ice Age)로 부르는 강추위다. 인간은 계속되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많은 연료를 필요로 했지만, 이내 목재 공급은 부족해진다. 걷잡을 수 없는 삼림 파괴에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벌목을 금지하기도 했다. 결국 새로운 연료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고, 이때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대표적인 화석연료인 석탄이다.
산업혁명의 발생지기도 한 영국은 석탄이 널리 분포해 있는 지역이었다. 문제는 늘어나는 석탄의 수요에 따라 채굴하는 땅의 깊이가 깊어져 발생하는 지하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그래서 고안한 기술이 바로 초기 형태의 증기기관이었다. 예로부터 물을 끓여 기계를 작동시키는 방식은 많이 구상돼왔다. 그러나 실용성이 인간의 노동력에도 못 미치는 조악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군 엔지니어로 일하며 석탄광산의 배수장치에 관심을 가졌던 토머스 세이버리는 증기를 밀어 넣어 식힌 진공 상태의 용기로 지하수를 빨아올리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이후 토머스 뉴커먼, 제임스 와트를 거치며 증기기관은 광산은 물론 각종 산업에 상용화될 정도로 발전한다. 산업혁명 시기에 증기기관이 주로 쓰인 곳은 옷감을 생산하는 방적기, 제철소 및 각종 공장의 생산라인과 증기기관차 등이다. 자동화로 인해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대량생산체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급증한 소비와 쓰레기, 천연가스 배출은 인류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화석연료와 증기기관은 현 문명의 시금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번영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수억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태양에너지인 화석연료를 꺼내 이룬 번영은 과거 오랫동안 문명을 지탱해왔던 안정된 기후를 붕괴시키는 위협으로도 돌아온다.
여기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대기 중 탄소량 급증이다. 산업혁명 이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6%, 메탄은 157%, 아산화질소(N2O)는 약 22% 증가했다. 100년 만에 지구의 온도를 1도나 올렸다. 오늘날 기후는 빙하기 이후 1만년에 걸쳐 4도가 상승한 결과다. 산술적으로 1도가 오르는 데 2500년이 걸렸다고 가정한다면, 산업혁명 이후 25배 빨리 기온이 상승한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이번 세기 내에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면 지구의 자원 재생산 능력을 나타내는 생태용량(biocapacity)은 더이상 버티지 못할 것으로 내다본다. 사실상 더 오르면 안 된다는 소리다. 1.5도만 상승해도 지구상 산호초의 70~90%는 사라진다. 2도가 상승하면 99% 이상 전멸한다. 산업혁명은 분명 인류 관점으로 눈부신 발전을 가져다준 티핑포인트지만, 지구 관점에서는 기후위기와 생태용량이 임계점에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마일스톤(milestone)이다.
70년 전 황금못, '대가속'
전 지구적으로 지표상 뚜렷한 변곡점을 보이는 곳에 인류세의 황금못을 박아야 한다면, 시기는 단연 1950년대 이후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인구, 경제, 산업, 소비 등 모든 게 폭발적으로 성장해 '대가속'(Great Acceleration)으로 불리는 시기다. 이 개념을 주도한 학자는 미국의 기후학자이자 인류세 분야 석학인 윌 스테픈(Will Stephen) 호주국립대 석좌교수다. 그는 2004년 국제지리-생명권프로그램(IGBP, International Geosphere-Biosphere Program)에 참여해 1950년 이후 급증한 인류의 사회경제적 활동과 지구 시스템의 상관관계를 그래프로써 지적한 바 있다. 그가 보여준 것은 대기 오염, 표면온도, 열대우림 손실량, 해양 산성화 정도 등 지구 시스템의 여러 지표가 인류 활동에 발맞춰 급격히 악화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그는 1950년을 '대가속'의 시기로 지적하고 인류세의 증거로 제시한다. 인류와 지구 시스템 사이 상관성을 지표로 보여줬기 때문에 인류세의 황금못으로서도 가장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다.
1950년대 이후 대가속은 분명 많은 사람을 빈곤에서 구제하고 인류에 눈부신 성장을 선사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물과 공기가 오염되고 토양이 황폐해졌으며 숲과 빙하, 동식물이 줄었다. 그 자리에는 콘크리트, 플라스틱, 쓰레기가 남았다. 지구는 뜨거워졌다. 윌 스테픈이 십수년 전 제시한 그래프처럼 지구 시스템은 여전히 인류의 활동에 따라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가까워지고 있다.
1700~2100년(예상) 인구증감그래프. 푸른 부분은 인구, 보라색 선은 인구증가율을 나타낸다. 1950년 급증했다. ⓒMax Roser via wikimedia commons(BY-SA) (자료: Our World in Data)
1950년부터 일어난 인류세의 가속을 보여주는 지표 중 가장 중요한 대표성을 띠는 것은 바로 '폭발'로 부를 만큼 크게 늘어난 인구다. 함께 급증한 사회경제 흐름 역시 결국 늘어난 인구의 편의를 충당하기 위한 상호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1900년과 비교해 2021년 인구는 약 16억5000만명에서 78억명으로 4배 넘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세계의 인구가 2050년 100억명에 도달할 것으로 계산하며 인구과잉 역시 '오염원'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GFN)에 따르면 이미 지구는 감당할 수 있는 생태용량을 초과한 '적자' 상태다. 사람이 살며 자연에 남긴 영향을 토지 면적으로 환산해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이라 부르는데, 이를 통해 계산한 세계 자연기금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인류가 한국인처럼 살 경우 3.3개의 지구가 필요하다. 자원을 많이 쓰는 미국인으로 바꿔 적용할 경우 필요한 지구의 갯수는 4.8개다. 1968년 <인구 폭탄>을 지은 생물학자 폴 에를리히는 지구의 적정 인구를 15억명에서 20억명으로 제시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대가속' 이전 인구수다.
1970년 세계 각국의 과학자, 경제학자, 교육자, 경영자들로 구성된 민간연구단체인 '로마클럽'은 인구증가, 공업산출, 식량생산, 환경오염, 자원고갈이라는 5가지 요소를 설정하고 시나리오를 그려보기도 했다. 이전 1900~1970년까지 자료를 근거로 이 비율이 계속 증가한다는 가정 아래 2100년까지 벌어질 일을 '성장의 한계'라는 이름의 보고서로 예측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시나리오 안에서도 지구의 가용자원은 '인구폭발'을 감당하진 못한다. '성장'이라는 끈을 놓지 않는다면 말이다.
돌파구는 어디에 있을까?
<총균세>를 쓴 미국 문화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노동의 종말>을 쓴 미국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 등 세계적 석학 11명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바가 과잉 생산, 자연 착취, 대량 낭비 등을 유발하는 자본주의 문명은 이제 종말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 도서 <문명, 그 길을 묻다>, 안희경, 448쪽.
'로마클럽'의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인구과잉에 대해 우려한 학자들 그리고 1950년 대가속의 시기나 18세기 산업혁명, 고대 농경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상수'로 포함해 빼놓지 않은 인류의 가치가 있다. 자본주의다. 인류는 언제나 더 많은 자본과 '성장'을 갈구해왔다. 자본주의의 기원으로 16세기, 멀게는 13세기까지 언급된다. 그러나 단순한 상업 정신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 체제로서 융합한 현대의 자본주의로 구분한다면, 그 발흥은 보통 산업혁명과 함께 18세기로 지적된다. 근대적 공업 생산 체제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1970년대 이후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가 결합함에 따라 소비는 가히 '세계화'를 맞는다. 시장의 자유화와 개방으로 교역은 국경을 넘었고, 일상 소비는 세계 전역에서 생산된 값싼 상품들로 채워질 수 있게 됐다. 이는 곧 원료나 중간재, 최종재 등을 생산하는 세계 곳곳에서 가격을 맞추기 위해 환경 훼손을 일으키는 결과를 낳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전시된 하와이 카밀로 비치의 플라스틱돌(Plastiglomerate). ⓒAaikevanoord via wikemedia commons(BY-SA)
소비의 세계화는 곧 소비로 탄생한 쓰레기와 폐기물 역시 세계 전역으로 퍼진다는 것을 뜻한다. 처리보다 '판매'가 값싸다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쓰레기는 환경시장을 통해 제3세계로 흘러 들어간다. 환경 피해도 가난한 지역과 사람들이 더 취약한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나 폐기물이 가지고 있는 유해성은 생태계의 흐름을 타고 결국 지구의 모든 지역과 사람에게 돌아온다. 우리 모두가 소비자로서 원인 제공자이자 피해자인 지구 온난화 문제처럼.
자본주의든 신자유주의든, 그간 인류의 지상과제였던 '성장'에 뜨거운 화력으로 작동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도 인류의 과제는 성장일까? 성장의 대가로 존속을 위협받는다고 해도 변함없이 추구해야 할까? 인구 팽창도 마찬가지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우리는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지만, 사실 지구 시스템을 유지할 적정 인구는 이미 옛날옛적 훌쩍 넘겼다. 지금처럼 환경을 자원 삼아 소비하는 '성장'을 지향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현재 지구 시스템과 인류세가 경고를 보내는 이유는 성장의 부족함이 아니라 과잉에 있다.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적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전하는 일이 경제·사회적으로도 중요해진 시대를 산다. 오늘날 기업에 ESG(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이 강조되는 점이나 정부 정책적으로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둔 그린뉴딜이 대두되는 현상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지금까지 돌아본 인류세의 '황금못'들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다. 이제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생존 방식은 전환이 필요하다.
똑똑! 오늘날 지속가능한 경영의 대세로 떠오른 ESG에 관해 뉴스로 다룬 적 있어요.
� 다음은 녹색 전환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을 다룬 '정말로 지속가능한 사회, 그린 뉴딜'이 이어집니다.
똑똑! � 추천해요
도서 <인류세>, 최평순·다큐프라임 인류세 제작팀, 해나무, 2020.
인간이라는 한 생물종이 지구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는 '인류세'의 의미와 현황을 돌아보기 위해 제작됐던 동명의 EBS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 책이다. 방송에 담지 못했던 과학적 내용이나 촬영 비하인드 등을 추가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현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인류세가 낯선 이에게도, 인류세를 시각적으로 접해보고 싶은 이에게도 추천한다.
정말로 지속가능한 사회, 그린 뉴딜
에디터의 노트
우리는 이미 지난 몇십년간 기후 위기가 도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익숙해졌습니다.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성장과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도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랜 시간 노출되어 온 기후 위기의 위험성과 긴급함에 대해 조금은 무뎌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렇게나 거대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개인의 노력이 아닌 사회 구조적인 수준에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해서 그런 것 같은데요. 그래서 더더욱 이러한 사회적 노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큰 그림도 결국은 작은 붓질 하나하나가 모여서 만들어지니까요.
정말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리는 우리
지구로부터 연료와 에너지를 착취하며 사는 행태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진 듯하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의 문제는 2019~20년 호주 산불, 2020년 미국 서부 산불, 그리고 2020년 아시아 전역에 발생한 폭우 사태 등으로 인해 인류 존속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2019년 10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수준의 탄소배출량이 유지된다면 204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1.5℃ 상승해 폭염·폭우·가뭄 화재와 같은 이상기후와 그로 인한 식량난이 발생할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와 심각한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결정적 선에서 저지하려면 전 세계가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줄여야 하며, 2050년까지 탈탄소 사회가 돼야 한다. 지금껏 예상한 수준보다 훨씬 급진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경 과학자들은 더 이상 인류는 물러날 곳이 없으며 지금 당장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 실현을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한다고 입 모아 말한다. 탄소중립은 개인이나 단체, 국가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다시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그린 뉴딜이다.
그린 뉴딜이란
출처: Foreign Policy
그린 뉴딜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현대 사회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 경제적 어려움을 아울러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나 법안을 말한다.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기반 산업과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정책들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대공황 시기 미국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행정부의 경기부양책, 뉴딜(New Deal)의 이름을 따와 그린(Green)과 합친 것이다.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정책의 모양새는 나라마다 각기 다르지만,
골자는: 기존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 구조를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산업 구조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며, 결과적으로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에 더욱 취약한 계층의 피해를 줄여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즉,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산업 구조를 개편하되, 구조조정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제적·사회적 약자의 이해관계를 지켜야 한다는 목표가 명확하다. 그러나 그린 뉴딜은 본래 단순히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정책의 집약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사회 계약으로서의 그린 뉴딜
넓게 본다면, 그린 뉴딜은 성장과 소비를 기준으로 인류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물질주의적 철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세, 그리고 더 이상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않고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직시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의지 그 자체를 말한다. 오로지 성장과 부를 목표로 하는 현재 사회의 정치·경제적 결정 구조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대신 국민이 국가에게 의무를 지는 사회 계약의 의미를 확대하여, 국가는 국민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하되 국민도 그 목표를 위해 특정 의무를 지는, 진화한 형태의 사회 계약으로서 그린 뉴딜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과감한 결정과 실행이 필요한 긴급한 상황이라는 점과 더불어, 온 사회 구성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물론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지만 국가·계층·단체별 이해관계는 상충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합리적 계약'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린 뉴딜'이라는 표현이 대표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실천사항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전반적인 동의가 없는 것이다. 좁게 본다면, 그린 뉴딜은 특정 시점에 탄소중립성을 이루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포함된 정책을 의미한다. 각국의 정책들이 얼마만큼 진지하게 인류절멸이란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지, 또는 자본주의 모델에 대해 얼마나 비판적인지는 봐야 할 문제다.
출처: Vox과연 이렇게 과감히 바뀔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방대한 규모의 경제적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룰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기후 위기와 화석연료 산업의 좌초, 그리고 이에 따른 시장의 변화와 금융계의 진지한 토의는 이미 시작됐다. 심지어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발생한 전 세계적 경제 위기의 대응책으로도 그린 뉴딜이 해답으로 떠오르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의 구조조정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무엇보다 그린 뉴딜은 향후 수십년간 정치와 산업계의 핵심 동력이 될 40세 이하의 세대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기에 몇 가시적인 한계점들이 보완된다면 21세기의 변곡점이 될 가능성을 충분히 품고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지?
출처: New York Times아직은 말말말 뿐인 미국
미국 상원의회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제안되고 부결된 그린 뉴딜은 아이디어 모음집에 가까웠다. 2019년 2월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과 최연소 하원의원 오카시오 코르테즈 등 민주당 하원의원 64명과 상원의원 9명이 제출한 결의안은 17쪽에 불과한 분량이었고, 구체적인 법안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탄소제로사회로의 전환을 핵심의제로 삼아 그 목표를 위해 밟아가야 할 필수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안들을 제시한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전기차와 초고속 전기 열차 보급
100% 재생가능 에너지를 활용한 전력 생산
스마트 그리드 구축 등을 통해 2030년까지 10년 안에 미국을 탄소 순배출 제로 사회로 전환할 것을 촉구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가 걷던 길과는 정반대로, 2020년 당선 당시 파리 기후협약 재가입, 2050년 탄소배출 제로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2035년까지 환경과 청정에너지 산업에 2조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2000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EU 집행위원회가 유럽 그린딜(EU Green Deal)을 위해 10년간 제시한 1조유로(약 1300조원)도 여기엔 크게 못 미친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으로 '미국판 그린 뉴딜'을 통해 얼마나 과감한 수준의 결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파리 기후협약에 재가입은 했지만 그린 뉴딜은 결국 부결됐고, 집권당인 민주당 내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이 크게 갈리는 중이기 때문이다.
출처: BBC일찌감치 시작한 유럽
그린 뉴딜의 개념은 유럽에서도 ‘유럽 그린딜’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된다. 유럽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먼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과 에너지효율 향상에 관심을 기울였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일찍부터 에너지전환에 앞장서 온 이유는 단순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배출량 감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화석연료는 한정된 자원이고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에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경제는 언젠가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다. 계속해서 성장을 유지하려면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구조를 바꿔야만 했으며, 그 해답이 에너지 소비 지역의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는 재생에너지였다. 따라서 유럽의 그린딜은 그간 유럽 국가들이 추구해 왔던 에너지전환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환경만을 고려한 저탄소 정책이 아니라 ‘화석연료 이후’의 시대에도 순조롭게 경제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경제정책인 셈이다.
2019년 10월 EU 집행위원회에서 의결된 유럽 그린딜에는 50개의 정책이 나열돼 있다.
유럽 연합 가입국은 모두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줄이기로 약속
기업이 기후 법규를 피하기 위해 유럽 외부로 이전하는 것을 방지하는 탄소 국경세 부과
석탄 의존 지역을 돕고 그린딜의 부담을 분산하기 위한 전환 기금 마련 등
유럽은 역사적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인 모범적인 사례로 통한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에너지 사용량과 비례해 온실가스 배출량 또한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유럽에서는 오히려 1990년부터 2018년까지 경제 규모가 61%나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은 오히려 23% 줄었다. 물론 이는 그전까지 미국과 함께 산업혁명의 최전방에서 탄소 배출을 고려하기 전에 이뤄진 무분별한 성장을 기반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기후 위기를 경제 기회로 삼으려는 중국
중국은 그린 뉴딜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환경 보호를 국가 핵심 정책의 하나로 간주하고 신재생에너지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철도, 전력망, 물 처리 인프라를 친환경적 방식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2016년 발표한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제13차 5개년 규획 요강'(13.5 계획)에서 처음으로 '녹색'을 핵심 목표에 포함시킨 점은 중국의 친환경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이 국가 정책으로 '녹색'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포함된 정책 목표로는,
신재생 에너지 산업 확대와 에너지 절약 정책
친환경 차량에 대한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으로 전기차 시장 활성화를 견인
막대한 경제 효과 창출이
수소 에너지 산업 지원
중국은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며 관련 산업을 빠르게 성장시키고 있다. 환경문제를 새로운 산업군 육성으로 극복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은 현재 단일 국가로 가장 많은 탄소 배출량을 기록하고 있지만, 1인당 배출량으로 본다면 전 세계 47위에 불과하다.
출처: 청와대K-그린 뉴딜은?
한국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 등을 골자로 한 '디지털 뉴딜' 정책을 발표한 바 있는데, 여기에 그린 뉴딜 관련 정책도 추가했다. '녹색성장'의 연장선상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둔 ‘한국형 그린 뉴딜’의 구체적 사업 방안은 2020년 6월부터 차례대로 발표됐다. 여기에는 신재생 에너지 확산, 공공시설 제로에너지화, 전기차 인프라 확충 등의 목표가 포함된다. 친환경‧저탄소 사회로의 빠른 전환을 위해, 2025년까지 73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일자리 65만9000개를 창출한다는 정부 목표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형 그린 뉴딜에 담긴 정책 목표는 가까운 시일 안에 실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따라서 현재의 그린 뉴딜은 아직 하나의 완결된 정책이 아니라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풀어놓기 위한 일종의 '플랫폼'의 성격을 지닌다.
녹색 미래로 가는 길,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돈은 어디서 나는데?
가장 현실적인 문제점은 재원, 돈이 없으면 그린 뉴딜은 달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며, 이를 감당하기 힘든 저개발국가들에게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재원 마련을 위한 탄소세, 부유세, 누진세 강화 등은 시민들과 기업의 거부감이 크므로 조세 저항이 있으며, 별다른 재원 없이 추진했을 경우 기존 분야의 직간접적인 예산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그린 뉴딜이 꿈꾸는 수준의 사회·경제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희생자가 있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희생하고, 누가 이득을 보느냐의 문제다.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와 엔진 산업 등 기존의 산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어 실업자가 느는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또한 대량 실업난에는 경제적 위기가 동반되며 주로 사회 취약계층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산업재편 과정에서 각 산업의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반 산업의 이권이 크게 걸려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특히나 저탄소 산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의 경우, 내연기관보다 전기모터의 부품 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그에 따른 산업도 축소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고려했을 때 정당하고 공정한 그린 뉴딜이 무엇인지 복잡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해!
특히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문제임을 고려할 때, 탈탄소를 위한 국제 공조와 협력이 필수 불가결이며, 일부 국가에서만 추진하는 것으로는 완전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2016년 제23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195개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됐지만, 여느 국제 조약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파리협정은 강제성이 없다. 전체적인 감축량을 직접 제안한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협정은 각국이 자발적으로 감축목표를 정해 알아서 실천하는 체제이기도 하다. 미국, 러시아, 중동, 중국, 아프리카 등 화석연료 산업에 깊이 참여하는 국가들, 그리고 한걸음 늦게 산업 혁신을 통한 발전을 꾀하는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어려운 이슈다.
화석연료를 값싸게 불태우면서 먼저 성장한 국가들은 심지어 다른 국가의 식민지화를 통해 성장한 경우가 많다. 정치적·경제적 억압에서 벗어나 물질적 풍요를 이룩하려는 국가에게 이제 와서 산업 구조를 친환경적으로 재편하라는 꾸짖음이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따라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에는 신흥성장국과 선진국의 정치·경제적 갈등이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으니 눈여겨봐야 한다. 세계 2대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중국과 미국은 각각 이러한 신흥성장국과 선진국의 대표격이다. 두 국가 간 무역 분쟁과 외교 갈등에서 환경 문제가 핵심 의제로 떠오른 것에서 사안의 중요성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걸로 충분할까?
핵심적으로, 진보 정책으로 여겨지지만 어디까지나 친환경을 표방한 경제 성장정책이기 때문에, 다른 한편에서는 겉포장지만 바꾼 토목공사에 불과한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라고 지적한다. 끝없는 성장과 소비라는 허구의 자본주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이 늘면서 화석연료 사용도 늘었고, 현재와 같은 소비수준으로 재생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활용을 18배나 늘려야 한다.
이에 기후변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탈동조화와 탈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래 경제성장은 자원소비를 바탕으로 이뤄져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이에 자원소비를 줄이되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 기술 혁신으로 인한 효율상승을 전제로 탈동조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친환경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기에, 정치·경제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공감대가 형성돼 여러 국가의 환경정책의 기본개념으로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자원소비와 경제행위가 분리돼 친환경적 목표 내에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필연적으로 파생된다. 어떤 환경경제학자들은 탈동조화론의 최종 목표, 즉 환경과 경제의 절대적 분리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다. 성장은 필연적으로 자원소비와 환경파괴를 동반하기 때문에, 탈성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꿩도 먹고 알도 먹고 싶지만, 앞을 내다보지 못하며 내는 욕심일까.
정말로 지속가능한 동력원, 신재생에너지
에디터의 노트
제가 학교를 다니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화석연료를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로 꼽히는 것은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의 매장량이 제한돼 고갈되리라는 전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면 팔수록 새로 발견돼 늘어나는 매장량과 발전된 채굴기술 도입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화석연료를 모두 써 없애버릴 것이라는 걱정은 없죠. 그런데 지금은 기후 위기로 인한 새로운 데드라인이 생겼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화석연료를 완전히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중요한 시대적 과제를 맞이한 인류가 어떻게 숙제를 풀어가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화석연료 이후 에너지의 미래는?
화석연료는 인류에게 전후무후한 양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선사해 문명사 자체를 뒤집어놓았다. 저장성도 강하고 열량도 크며 활용처도 넓어 산업혁명을 포함한 근대 인류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대규모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데 맛이 든 인류는 절대로 화석연료 사용 이전의 시대 수준으로 순순히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우리에게 화석연료와 대등한 경제성과 효율성을 가진 대체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것이 최대의 숙제가 됐다.
땅속에 있는 화석연료는 거대한 탄소 저장고의 역할을 한다. 연소하면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가 배출되지만 연소하지 않으면 그 탄소가 땅속에 석탄, 석유의 형태로 저장돼 있는 셈이다. 그런데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의 주범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온난화의 약 55%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은 이러한 탄소 배출이 적거나 없어야 한다.
저탄소 사회의 동력원, 신재생에너지
출처: Wikimedia Commons
신재생에너지는 신 에너지와 재생 에너지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신 에너지는 새로운 물리력, 새로운 물질을 기반으로 하는 ▲핵융합 ▲자기유체발전 ▲연료전지 ▲수소에너지 등을 의미한다. 재생 에너지는 재생 가능한 자원, 즉 ▲햇빛(태양) ▲바람(풍력) ▲비 ▲조수(조력) ▲파도 ▲지열과 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보충되는 자원으로부터 수집된 에너지다. 두 종류의 에너지원 모두 저장된 탄소에서 에너지를 끌어내지 않아 기후에 끼치는 영향이 적기 때문에, 화석연료를 대체할 미래의 에너지로 손꼽힌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이미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에 있는 인구 약 10만명의 라인-훈스 뤼크 지구(Rhein-Hunsrück District)에서는 공식적으로 지역 내 필요한 전력의 100% 이상을 재생 에너지로 얻고 있고, 독일, 미국, 호즈, 캐나다, 일본, 덴마크, 스웨덴의 여러 지자체는 2030년 내에 재생 에너지 비율을 100%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만 신재생에너지 열풍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구글은 2017년부터 자사 운영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재생 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 나아가 BMW, 이케아(IKEA), 페이스북 등 많은 수의 기업도 각각 수년 내 전 사업장에서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에너지 전환을 꾀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신재생에너지는 전 세계 전력 생산량의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2030년까지 24%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이 성장의 대부분은 태양광과 풍력에서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신재생에너지 생산량의 절반 가량(8%)은 댐 건설을 통한 수력 발전으로 이뤄지지만, 댐을 짓는데 필요한 비용과 까다로운 환경 조건을 고려했을 때 성장성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햇빛으로부터 오는 무한동력, 태양광
태양광 발전은 말 그대로 태양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발전 방법이다.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안겨다 준 광전효과를 기반으로 하는데, 광전효과에 따르면 빛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광자가 특정 물질에 닿으면 전기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 따라서 태양광 발전에서는 햇빛에 반응하는 전지모듈, 태양전지를 사용한다. 저장된 물을 태양열로 끓여 이것으로 터빈을 돌리거나 열에너지를 그대로 사용하는 태양열 발전과는 다르다.
장점
태양광 발전이 신재생에너지의 대표 격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단 화력 발전보다는 여러모로 친환경적이다. 태양광도 발전 패널 제작 또는 처분 과정 때문에 환경파괴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으나, 발전하는 도중에는 대기오염 등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거의 없다.
정비요소가 적어 유지비가 저렴하다. 대형 발전기에 비하면 부품별 모듈화가 돼있어 고장나도 쉽게 고칠 수 있고 무엇보다 움직이는 기계 장치가 아예 없으므로 마모현상으로 인한 유지보수가 없다.
사고 위험이 0에 수렴한다. 물론 전기 장치니만큼 전기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화력이나 원자력같이 폭발 위험이 있거나, 수력발전처럼 댐이 터진다거나, 풍력처럼 십수미터 짜리 풍차, 터빈이 수십 미터 상공에서 떨어지는 불상사가 없다.
다른 발전에 비해서 부지 제약이 적다. 물론 효율성의 차이는 있지만, 햇빛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방식 중 일반인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유다.
무엇보다, 태양광 발전의 압도적인 장점은 재생 에너지로선 최상위 수준의 높은 단위 면적당 에너지 생산량이다. 10W/㎡를 생산 가능한 태양광 발전소는 단위 면적당 에너지 생산 효율이 풍력발전의 4배다. 지구에 와닿는 태양 에너지는 미터당 100~250W인데, 현재 태양광 기술의 효율이 10~20%이고 향후 더 오르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어떤 재생 에너지와 비교해도 전력 생산이 효과적이다. 단위 면적당 에너지 생산량은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와 높은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을 가진 한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단점
태양광 발전의 가장 뚜렷한 단점은 날씨와 기후에 따른 출력 편차와 그에 따른 변동성이다. 태양광의 방향은 계속 바뀌고, 흐린 날, 비오는 날 등은 가동이 불가능할 수 있다. 새벽이나 저녁 시간대에도 빛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전력 발전량이 많지 않다. 따라서 태양광 발전은 전력생산이 일조시간에만 높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렵다. 이러한 수동적이고 불규칙적인 전력생산은 공급이 요구될 때 이를 맞추기 어렵다는 단점을 내포하고 있다.
단적으로, 2020년 여름철 피크타임에 태양광 발전이 대한민국의 전체 발전에서 차지한 비중이 7월 0.8%, 8월 0.9%에 불과했다. 폭우 때문에 발전을 위한 태양광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냉난방으로 인해 연중 전력 소비가 가장 많은 여름철 장마 기간에 전력 생산이 어려운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태양광의 대규모 도입이 어느 정도 성공적인 이유는 다른 나라와 육로로 연결돼 전기를 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와 연결된 송전로가 없는 한국은 태양광 발전이 중단되는 시기에 부족한 전력분을 충당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 날씨와 기상에 따라 극심하게 변하는 전력 생산은 전력 수급 계획을 까다롭게 하기 때문에, 태양광이 주력 발전 방식이 되기는 힘들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확대를 위해서는 복합발전(태양광+풍력의 조합 등) 형태와 정말 필요할 때 전기 공급이 가능한 촘촘한 전기망을 기획하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바람이 불면 배도 가고 우리도 간다, 풍력
풍력 발전은 바람의 힘과 풍차 원리를 사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무려 천년 역사를 가진 풍차부터 날개가 10미터에 이르는 현대의 초대형 풍력 발전기에 이르기까지, 풍력은 수력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인류가 사용해온 재생 에너지다. 태양광과 마찬가지로 풍부하고 재생가능하며 탄소 배출 및 환경오염이 적어 화석연료를 대체할 매력적인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장점
쓰레기나 폐기물, 온실가스 배출이 적을 뿐더러, 지구는 필연적으로 대류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거의 항시 바람이 생기므로 연료 소비 없이 발전이 가능하다.
풍력 터빈은 유지 보수가
높은 공간에 설치되기 때문에 아래의 공간에서는 농업 등의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공간적으로 많은 면적을 차지하지 않는다. 태양광과 비교해
(지역에 따라) 단가가 다른 발전 방식보다 낮다. 유럽의 일부 지역과
원자력 발전과 비교해도 많이 저렴한 편. 그러나 한국의 경우 풍력 발전 단가는 아직 원자력보다는 비싸고, LNG·석유 발전보다 저렴한 수준이다.
관광단지로도 활용돼 지역 경제 성장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단점
1년 내내 바람이 부는 곳 자체가 찾기 힘들며 전력 수요가 있는 곳까지의 접근성, 경제성이 있는 지역을 찾기 어렵다. 의외로 양질의 풍력 자원도 지하 자원처럼 지구상에서 지역별로 불균일하게 분포하는 자원이다. 접근성도 좋으면서 적절한 수준의 바람이 연중 안정적으로 불어오는 곳은 많지 않아 안정적인 전력 생산이 힘들다. 이러한 변동성은 태양광과 공유하는 치명적 단점이다.
추가적으로, 풍력 발전기의 날개에 치여 죽는 동물의 수가 정말 많다. 풍력 발전에 유리한 바람 조건은 조류의 입장에서도 이용하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에, 생태통로에 살생기계를 설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만 1년에 50만 마리의 새가 날개에 맞아 죽는데, 강한 바람을 맞이하기 위해 높이 설치되는 발전기의 특성상 이렇게 죽는 새 중 개체 수가 적은 희귀종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철새가 상륙할 때마다 몰려들어 우수수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일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다 위에 풍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도 하는데, 이를 해상 풍력이라 한다. 육지에서보다 바람도 일정하고 세기도 센 편이며 일조권 및 소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건설비와 유지비가 비싸다. 또한, 자연스럽게 전기 소비 지역까지의 거리가 멀어져 전력 운송의 손실이 커지는 문제가 있다. 해양생태계를 해친다는 우려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업에 지장을 받을까 우려한 어민들이 배를 타고 항의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원자력
원자력 발전은 화석연료의 대체 에너지 중 재생 에너지가 아닌 신 에너지에 속한 발전 방식이다.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원자력발전은 핵분열을 이용한 것이다. 첫 사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로, 그때까지만 해도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됐지만 점차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주요한 발전양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
장점
원자력의 가장 큰 장점은 적은 연료 소모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자력(핵분열)은 현재까지 인류가 보유한 에너지원 중에서 출력이 가장 높은 에너지원이다. 우라늄 1kg이 핵분열로 내뿜는 에너지가 석유 200만 리터 또는 석탄 3000톤의 에너지와 필적한다고 한다! 이렇게 원자력의 에너지 생산 효율성은 태양광과 풍력을 비롯한 재생 에너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극도의 효율성으로 인해 환경오염이 매우 적은 편이고 전기 생산 비용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단점
"그래서? 그거 터지면 어떻게 수습할 건데?"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절대 안 터지니 걱정하지 마라"라는 무책임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문제점이 있다. 원자력 사고는 일단 한 번 크게 터지면 수십 킬로미터 이내의 지역은 방사능으로 인해 사고의 규모나 종류에 따라 까마득한 기간 동안 아예 사용은 고사하고 장비를 갖추고도 진입 또는 주둔이 불가능에 가깝게 된다. 현대의 인류는 원자력 에너지를 활용할 줄은 알면서 정작 사고가 날 때의 해결 능력은 완전히 확보하지 못했고, 대표적 원자력 사고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사고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와 월성 원자력 발전소 20km 이내에 부산이라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와, 울산이라는 대한민국 제1의 공업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사고를 대비해 대피 훈련을 한다지만 그것은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될 수 있어도 대규모 공업지대의 쇠퇴 등 재기 불능의 피해를 방지해주지는 못한다.
나아가 핵 폐기물의 문제가 있다. 몇백년 후에도 지구 생태계와 후대 인류에게 방사능 위협으로 남을 폐기물들은 대부분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원자력 발전소 내부에 임시로 보관한다. 방사능 폐기물 안에 들어있는 스트론튬의 반감기는 28년, 세슘의 경우 30년이다. 플루토늄은 무려 2만4000년의 반감기를 가진다. 그리고 이조차 반감기일 뿐 인류와 지구 생태계에 안전한 수준으로 방사능 수치가 떨어지기 위해선 무려 10만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재생 에너지만으로 충분할까?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장면. 태양광 발전을 위해 전 세계가 사막화된 미래를 그린다.
이렇게나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원자력이지만, 끊임없는 논란 속에서 인류가 섣불리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2050년 데드라인까지 재생 에너지만으로 탈탄소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사실 태양광과 풍력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점은 기술 발전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햇빛을 더 일정하게 비추고 바람을 끊임없이 불게 하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더 효율적인 태양전지와 풍력 발전기를 만들 순 있지만 결국 풍력과 태양광은 원자력에 비해 단위 면적당 생산하는 전력이 터무니없이 적다. 같은 전기 생산량을 위해선 훨씬 많은 지면을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태양광은 원자력의 450배 면적의 땅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풍력 발전기와 태양전지를 만드는 데 발생하는 폐기물과 자원도 원자력에 비하면 무려 10배에서 17배 많다. 불편한 질문을 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인류의 환경을 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 것일까. 탈원전과 탈탄소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 가능할까.
여기서 우리 판단에 도움이 되는 지표가 있다. 에너지원별로 1TWh 단위 생산량당 인명 피해를 계산해보면, 석탄은 24.6명, 석유는 18.4명, 그에 비해 원자력, 풍력, 태양광은 각각 0.07명, 0.04명, 0.02명이다. 화석연료로 인한 공기오염만으로 매년 700만명이 죽는 것으로 추산된다.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원자력은 안전하고, 화석연료는 더더욱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당연히 원전사고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한 100% 재생 에너지 시스템이지만, 탈원전 노력으로 인해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는 것은 소탐대실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풍력도, 태양광도, 원자력도, 그 자체로 완벽한 에너지원은 없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재생 에너지만으로 인류의 전기 수요를 감당할 수 없지만, 위험성에 대한 대책 없이 원자력을 신봉하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다만 명확한 것은, 이 글에서 언급된 신재생에너지 세 가지 모두 인류가 녹색 사회로 가는 길에 필요한 자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 각각의 장단점을 최대한 살려 인류 절멸의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다.
� 다음은 환경과 물질의 공존에 대한 탐구, '지구의 혈액이 된 플라스틱'이 이어집니다.
똑똑! � 추천해요
도서 <글로벌 그린 뉴딜>, 제레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민음사, 2020.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제시하는 그린 뉴딜. 그린 뉴딜을 ‘기술 혹은 산업전환’에 국한해서 이해하거나, 경기진작을 위한 토목사업에 편중된 시각으로 접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그린 뉴딜’이 가진 문명전환적 성격이 무엇이고, 그 귀결이 가져올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그 구현 과정은 어떡해야 하는지 아니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사념이 담겼다. 320쪽짜리 책에서 후주만 60여쪽에 달해 추가 연구를 위한 학술지 같기도 하지만, 변화가 절실한 시대에 맞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에게 유익한 정보가 가득하다.
지구의 혈액이 된 플라스틱
에디터의 노트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물질과 가장 가까울까. 잠깐만 눈을 책상 앞으로 돌려볼까.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그들 '플라스틱'이 눈앞에 보일 테다. 플라스틱은 인류의 삶을 바꾼 기적의 소재기도 하지만, 지구의 모습을 바꾼 역적으로도 손꼽히는 녀석이다. 플라스틱은 환경에 어떤 색의 밑줄을 그었을까.
플라스틱에 휩싸인 지구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를 지나온 지구. 지금은 '플라스틱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화한 인간만큼이나 플라스틱이라는 신박한 물질은 눈길을 어디로 돌려봐도 발견된다.
플라스틱은 '열 또는 압력에 의해 성형할 수 있는 유기물 기반 고분자 물질 및 그 혼합물'로 정의된다. 뜨겁게 열을 가하거나 조물거려서 모양이 만들어지는 물질이라는 뜻이다. 색깔도 다양하게 입힐 수 있고 가벼운 무게와 범용성 덕에 플라스틱이 안 들어가는 물건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이에 플라스틱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소리까지 듣는다.
1800년대 자연에서 얻은 천연수지를 활용해 만들어진 '셀룰로이드'를 플라스틱의 기원으로 본다. 열로 녹이면 어떤 모양으로도 바꿀 수 있고, 단단하지만 탄력을 머금은 특성으로 사랑 받았다. 이후 우리에게도 익숙한 '폴리에틸렌', 지금의 플라스틱의 대명사가 된 물질이 1930년대에 만들어졌다. 이 폴리에틸렌이 중요한 것은 바로 '비닐의 시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지며 가격이 하락한 폴리에틸렌을 활용해 비닐봉투를 개발했다. 이전까지 잘 찢어지는 종이나 무거운 천 가방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다. 인류사 입장에서 비닐봉투는 그야말로 '대박사건'이었고, 재앙의 시작이기도 했다.
폴리에틸렌을 필두로 일명 스티로폼으로 불리는 폴리스티렌을 비롯해 나일론, 폴리에스터, 폴리우레탄, 폴리프로필렌 등 이름 앞에 폴리(Poly-)가 붙는 수많은 플라스틱 원료들이 삶 속에 침투했다. 지금 우리는 나일론으로 만든 스타킹을 신고, 폴리스티렌으로 감싼 냉동식품 택배를 받고,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휴대폰 케이스를 쓰며 플라스틱 시대 속을 살아가고 있다. 가볍고 싸고 모양도 마음대로 만들어주니 이보다 편한 물건이 없다.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릴 수 있으니 수요가 폭발한 것은 당연한 일. 당장 눈앞을 보자. 굴러다니는 커피 테이크아웃 컵이나 빨대, 볼펜 등 눈에 들어오는 십중팔구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1950년 150만톤이던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9년 3억6800만톤으로 250배 가까이 뛰었다. 개발지상주의 속에서 플라스틱은 대량 생산과 소비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플라스틱의 역습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하루라도 만나지 않은 날이 있을까. 편리함은 늘어났지만 그만큼 환경은 병들어간다.
이제는 플라스틱이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바꾼 세상은 편의와 함께 부작용도 낳았다. 툴린이 비닐봉지를 만들었던 이유는 자못 역설적이다. 종이봉투를 만들기 위해 희생되는 많은 나무들을 걱정했던 게 개발의 기원. 그러나 비닐봉지의 싼 가격 탓에 무분별한 쓰레기가 나온 것은 생각 밖의 일이었다. 환경을 생각한 발명이 더 큰 환경파괴를 불러온 꼴이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1인당 페트병과 플라스틱컵, 비닐봉투 등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11.5kg다. 개수로 계산하면 PET병은 96개(1.4kg), 컵은 65개(0.9kg), 비닐봉투는 460개(9.2kg)를 각각 쓴다. PET병은 나흘에 하나 쓰고, 컵은 닷새에 하나를 쓴다. 비닐봉투는 하루에 하나 이상 쓰는 셈이다. 지난 2019년 우리나라에서 방치되거나 버려진 각종 쓰레기는 120만톤. 이중 적지 않은 부분이 플라스틱 쓰레기라고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그 규모를 넘어 환경에 큰 나비효과를 낳는 게 문제다. 1분마다 트럭 한 대를 채우고도 남는 분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쏟아져 들어간다고 한다. 해양환경정보포털 자료를 보면 지난해 바다 쓰레기의 83.4%가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이다.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이 파도에 쓸리고 바위에 부딪히며 쪼개진다. 물고기의 뱃속에서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이 나오는가 하면 이는 상위포식자 또는 인간의 입으로 들어간다. 거북이를 휘감은 비닐봉투의 처참한 모습도 더는 낯설지 않다. 플라스틱은 잘게 쪼개져도 여전히 플라스틱이다. 이처럼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낳는다. 흡사 지구의 혈액이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꼴이다.
플라스틱의 연못이 된 바다에서 자란 생물들은 다시 우리 식탁에 오른다. 한선기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가 한국보건학회 학회지에 낸 논문을 보면 유럽에서 조개류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연간 섭취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연간 1만1000개. 우리나라 국민도 유럽인 못지 않게 조개를 많이 먹을 테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이 다시 우리 입에 들어오는 세상. 혈액 속에 플라스틱이 흐른다.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돌고 돌아 우리의 피를 오염시킨다.
여기에 더해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화학 부산물은 환경에 진화가 아닌 후퇴를 일으켰다.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만드는 물질인 가소제는 장시간 노출될 경우 신장이나 생식 기능에 영향을 준다. 플라스틱은 튼튼하면서도 날카로운 부분이 없어야 하는 아기욕조에 널리 쓰인다. 근데 아기욕조에서 유해 화학물질이 나왔단다. 쓰임의 역설일까. 난감하기 짝이 없다.
딜레마는 여기서 발생한다. 쓰레기가 나온다고 해서 안 쓸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안 쓰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아니 플라스틱 자체의 잘못도 아니다. 무엇보다 플라스틱만큼 편하고 널리 쓰이는 물질이 지구상에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플라스틱 시대
현재로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플라스틱. 코로나19는 인간을 힘들게 했어도 플라스틱에는 기회를 주는 모양새다. 방역의 중요성이 강조될 때 위생과 편의성 측면에서 플라스틱을 뛰어넘는 물질은 찾기 힘들었다. 원하는 모양으로 제작하기 쉬워 주사기, 가림막 같은 방역물품으로 재깍재깍 만들어졌다.
본격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금. 플라스틱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용기'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구세주로 다가온다. 모든 인류가 플라스틱 주사기를 통해 백신을 맞는다. 인류의 희망이 플라스틱에 담겼다. 손가락 만한 주사기가 되기 위해 몸을 녹인 플라스틱은 코로나19 종식에 온 몸을 바친다. 우리나라는 올해 9월까지 전국민 70% 이상 백신 접종이 목표다. 종류에 따라 2회 접종이 필요한 경우는 접어두더라도 3000만개 이상의 주사기가 인간을 위해 투신한다. 애증이 교차했던 플라스틱이지만 이번에는 백번 절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비대면 시대 늘어난 배달 문화에서 플라스틱이 차지하는 지분도 크다. 늘어난 배달용기 수요를 유리나 종이가 모두 감당할 수 있었을까. 답은 '절대불가'일 테다. 플라스틱은 또한 사람들 사이 거리두기에 필요한 투명 가림막으로도 만들어져 활용됐다. 접촉을 막기 위한 비닐장갑도 플라스틱의 산물이다.
하지만 주사기를 비롯해 배달용기나 비닐장갑, 비말이 튄 가림막 모두 두 번 쓸 수는 없다. 한 번 제대로 살고 떠나야 하는게 이들 플라스틱의 운명. 이들은 쓰레기장으로 흘러가거나 녹아서 다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죽어도 죽지 않는 플라스틱. 정말 어떡해야 하나.
플라스틱 등 폐기물 문제는 전 세계 공통의 문제, 자원순환형 사회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선택 — 2018년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 발표 당시 환경부
환경부는 지난 2018년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제조와 유통, 배출, 수거, 재활용까지 플라스틱 사용 전반을 아우르는 관리 대책이다.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50%까지 줄이고, 재활용률은 34.4%에서 70%까지 높이는 계획이었다. 플라스틱과 공존은 어쩔 수 없지만 부작용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재활용분담금(EPR·Extended Producer Pesponsibility) 확대다.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이들이 향후 재활용에 쓰이는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건데 필요한 비용을 먼저 떼 가는 일종의 선이자 형태다. EPR 대상 품목을 늘려 재활용업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양이 생산되더라도 재활용에 들어가는 비용은 더 많이 걷히는 구조라 원활한 재활용 사업에 도움이 된다.
또 한가지는 일회용품 줄이기다. 대책에는 2022년까지 일회용컵과 비닐봉투 사용량을 35% 저감하는 내용이 담겼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가장 큰 암초를 만난 부분이다. 사태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듯 했지만,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경계' 이상으로 바뀌며 상황이 급변했다. 경계 단계에서는 카페 내 플라스틱컵 사용금지 등 일회용품 사용규제에 예외를 둔다. 카페 내에서 커피를 먹더라도 일회용컵 또한 사용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 끌어내리려던 일회용품 사용량이 코로나19로 다시 폭발했다.
플라스틱을 대체할 대안이 뾰족하지 않다면 우회로라도 찾아야 한다. 다행히 돌파구를 찾는 노력은 계속된다. 유통업계가 선두에 선 모양새다. 'ESG' 경영의 영향이 컸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릿글자를 딴 ESG는 최근 기업들의 경영 철학으로 각광받는다. 여기서 'E'에 방점을 맞춘 유통업계는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친환경, 재활용 포장재를 사용하거나 재활용 패키지 도입을 서두른다. 경영적 차원이든 이윤추구를 위한 이미지 메이킹이든 어쨌든 움직임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아예 플라스틱 소재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전분 등 원료가 환경친화적이고, 분해도 기존 플라스틱보다 빠르다. 이미 100% 자연분해 생분해성 수지인 'PLA'(옥수주 전분 성분 친환경 수지)와 'PBAT'(생분해성 고분자)가 상용화됐다. 생분해 플라스틱이라고도 하는데 짧게는 1년 정도면 썩는다고 한다. 기존 플라스틱이 썩는 데 500년가량이 드는 것과 비교하면 획기적인 변화다. 이미 옥수수 전분을 활용한 필름과 빨대, 컵 등이 생산되고 있다. 이밖에 재활용이 쉽도록 PET병에 별도의 라벨을 붙이지 않고 제작하거나 곡물 등에서 추출한 요소로 플라스틱 대체 물질을 만드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사람들도 바뀐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7.4%가 플라스틱 포장이 과하다 느꼈다고 한다.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 대부분은 플라스틱 줄이기에서 시작된다. 일회용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장바구니나 텀블러를 쓰고 SNS에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들의 제로 웨이스트 이야기를 전한다. 비닐봉투를 받지 않으려 에코백을 들고 온 손님을 이상하게 보는 상점은 많지 않다.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익숙해졌단 얘기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2017년 2649억달러 규모였던 재활용 시장은 2024년 3676억달러로 커질 거라 한다. 하지만 이게 계속될지, 잠시 유행으로 끝날지는 모를 일이다. 결국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는 생분해 바이오 플라스틱 개발 지원을 늘린다고 한다.
어쨌든 노력은 시작됐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닐의 발명처럼 천지개벽할 발전이 이뤄지기 전까진 플라스틱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동안 환경은 울상짓는다. 바다에는 플라스틱 쓰레기, 우리 몸속에는 미세플라스틱이 흐른다.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할 텐데 지켜볼 일이다.
� 다음은 우리 삶에 활용되는 금속들의 이야기를 담은 '쇠의 무게에 눌려 굳어버린 환경'으로 이어집니다.
쇠의 무게에 눌려 굳어버린 환경
에디터의 노트
환경을 파괴하는 여러 물질 가운데 대표주자로 꼽히는 플라스틱. 그런데 비단 플라스틱만의 문제일까. 쇠는 지구가 깡통 세계가 되는 데 일조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과 이를 그대로 머금은 채 쏟아지는 쓰레기로 지구가 굳어가고 있다.
깡통이 세운 세상, 지구도 딱딱해졌다
환경에 빨간불을 켠 게 플라스틱만이랴. 철이나 구리, 알루미늄 같은 금속 물질을 아우르는 세칭 '쇠'도 지구의 혈액을 응고시키고 있다. '고철 덩어리' '깡통' 같은 단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어떤가. 쓸모없는 쓰레기가 됐다거나 바보 같은 느낌일 터. 예쁜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쇠도 환경오염에 일조했다.
사실 쇠는 산업 발전사(史)의 묵직한 기둥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다리나 철로, 건물 등 기간시설을 마련하는 뼈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단단한 성질처럼 세계의 산업을 탄탄하게 지탱했고 우리 삶도 함께 든든해졌다.
영국은 18세기 말 쇠를 녹이는 고로(高爐)를 개발해 대량 생산의 물꼬를 텄다. 고로 개발이 철강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0년 세계 철강 생산은 2830만톤, 50년이 흐른 1950년경에는 약 2억톤 수준으로 늘었다. 1970년대 이후 세계 철강 소비는 연평균 2.3%씩 늘어나며 계속 몸집을 불렸다. 폭넓은 산업적 용도 때문인지 쇠는 '산업의 쌀'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경제도 이 쌀을 먹고 컸다. 6·25 전쟁 이후 어려움을 겪던 우리나라가 포항제철(현 포스코)로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2020년 전 세계 조강(쇳물) 생산량은 총 1조8억6900만톤인데 우리나라는 그중 7200만톤을 담당해 세계 6위권의 철강 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통계를 떠나 쇠는 플라스틱 못지않게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오늘 일과를 들여다보자. 편의점에서 사 먹은 캔음료 하나, 내가 운전대를 잡았던 자동차, 스마트폰에 들어간 수백 개의 납땜. 시원한 과일이 기다리고 있는 냉장고. 퇴근 후 몸을 누인 집 벽에 들어간 철골까지… 철강산업의 손길은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오늘날 환경의 관점에서 쇠를 바라보는 시각은 호의적이지 않다. 구리나 알루미늄, 철 같은 금속들은 반대로 지구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먹고 버린 콜라캔을 볼까. 캔 하나가 땅속에 묻힌 후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00년. 내가 버린 캔 하나가 오롯이 사라지는 데는 내 손주의 손주의 손주의 손주의 손주가 태어났을 때나 겨우 가능하다.
이런 작은 예 외에도 쇠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등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 전반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하나씩 살펴보자. 고로에 쇠를 녹이는 과정서 많은 온실가스가 나온다. 철강산업은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업종이다. 2019년 배출량은 1억1700만톤으로 국가 전체 배출량의 16.7%를 차지한다. 두 번째인 석유화학업종(약 7100만톤)과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제조업 카테고리로 범위를 좁혀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9 에너지사용 및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를 보면 2019년 제조업 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각종 금속광물을 가공하는 제1차 금속산업(38.2%)이다. 화학 19.0%, 정유 10.9%보다 높다.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연이나 카드뮴, 수은이나 망간 같은 유해물질 배출, 폐수에 섞여 배출되는 쇳가루 문제도 있다. 대기오염은 물론이거니와 토양에 흡수되거나 하천에 흘러 들어가면 우리가 먹는 식물이나 물고기 등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IT가 만든 깡통 시대
IT 시대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오늘. 책상에는 고성능 데스크탑, 소파 앞에는 TV,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귀에는 금속 진동판이 들어간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혔다. 손목에 감긴 스마트워치가 뿜는 광택이 눈부시다. 이 글은 노트북으로 썼다.
IT 시대 속에서 전자제품은 이렇게 삶과 밀접히 닿아있다. 지루한 삶의 여백을 전자제품이 채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쇠는 든든한 뼈대다. 기판에 쓰인 수백 개의 납땜과 반도체. 이를 감싸고 있는 금속이 IT 시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허나 전자제품을 평생 쓰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TV의 평균 수명은 10.7년, 냉장고와 세탁기는 10년이다. 에어컨은 그보다 조금 더 긴 12.9년을 쓴다고 한다. 대략 10년을 동고동락한 뒤에는 모두 이별할 운명이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같은 IT시대 총아(寵兒)들의 수명은 더 짧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새 전자제품을 지르는 데는 불을 켰지만 예전 것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잘 모른다. 오늘 만진 전자제품을 되돌아봤다. 스마트폰은 1년 남짓 썼고, 노트북은 100일이 안 된 따끈따끈한 녀석이다. 새 스마트폰이 손에 들어온 날 손때가 묻은 갤럭시 9+는 바로 중고업체에 팔아넘겼고, 노트북은 집앞에 내놓으니 3시간 만에 사라졌다. 그다음 행선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디로 갔지?
국제연합(UN)과 글로벌 전자폐기물 통계 파트너십(GESP)이 발표한 '글로벌 전자폐기물 모니터 2020'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에서 나온 5360만톤의 전자폐기물 가운데 17.4%만이 회수·재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10개를 버리면 8개는 새 생명을 얻지 못하고 스러진다. 유럽의 회수·재활용률이 42.5%로 가장 높았고, 아프리카가 0.9%로 가장 낮았다. 한중일 아시아 3국은 20%로 평균보다 조금 높았다.
전자폐기물 배출량은 2030년 7400만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극적인 변화가 없으면 이때도 10개 중 2개만 재활용될 테다. 문제는 재활용되지 않은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CFC)를 비롯해 수은과 카드뮴, 납, 크롬, 비소 같은 중금속은 땅을 병들게 만든다. 식물과 물, 동물의 몸에 중금속이 녹아들고, 이를 먹은 사람들의 몸엔 적신호가 켜진다. 쇠의 역습이다.
돈의 논리까지 작용한다. IT 시대가 환경에도 부익부 빈익빈을 일으켰다. 아프리카 가나는 세계의 전자 쓰레기장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 인근 아그보그블로시라는 마을은 전자쓰레기의 종착지가 됐다.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는 '바젤협약'도 경제 논리라는 대전제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아그보그블로시 주민들은 선진국이 보낸 전자쓰레기를 분해하고 처리한다. 그 대가로 구리 같은 금속을 얻거나 부품을 팔아 생계를 꾸린다. 이 과정서 유독물질을 그대로 들이마신다. 땅에 스며든 중금속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병들게 만든다. 마을에서 나온 달걀을 분석하니 다이옥신 허용치가 220배를 넘어선다고 한다. 이런 촌극이 벌어진 건 선진국 입장에서는 재활용보다 밀반출에 들이는 돈이 적게 들어서다. 선진국은 후진국을 활용해 환경을 지킨다. 혹자는 이 현상을 '독성 식민주의'라 일컫기도 한다.
돌파구는 있는가
쇠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됐다.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제철업계는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환경보호에 나서기로 했다.
매일 밥 먹는데 쓰는 수저도 쇠다. 플라스틱처럼 대체재가 마땅치 않다. 집을 짓는데 철제 빔보다 더 튼튼하고 오래가면서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소재가 있다면 세기의 발명이 될 터. 수도관을 유리로 만들 수도 없다. 자동차나 전자제품 시장에서 무거운 금속을 대신하는 가벼운 소재가 각광받곤 있지만, 카본 같은 대체재 또한 환경오염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허나 대체할 길이 없어 피하기만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항상 살을 부대껴야 한다면 조금이나마 피해를 줄일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실마리는 생산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철강 1톤을 만들 때 이산화탄소 1.85kg이 배출된다. 2018년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 1~2위 업체는 포스코와 현대제철로 나란히 철강회사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들이 환경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큰 그림은 탄소중립이다. 탄소중립은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줄여 제로로 만드는 개념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이 추세에 발 벗고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ESG 경영을 선포한 포스코는 탄소중립 달성을 천명했다. 탄소 배출의 선두주자(?)가 내놓은 선언이라 상징성이 크다. 쇳물을 만들 때 석탄 대신 수소를 활용해 탈(脫)탄소를 하겠다는 건데 제대로 성공하면 철강은 환경오염의 주범에서 진정한 산업역군으로 거듭날 수 있다. 허나 막대한 설비투자 비용은 걱정이다. 포스코가 탄소중립을 위한 설비 개선 액수로 추산한 금액은 53조원이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환경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배출되는 탄소를 가두는 탄소포집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도 언급되지만 비용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정부 지원이 핵심인데 아직 2050 탄소중립의 구체적인 로드맵은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형태의 투자 방식은 흥미롭다. 현대제철은 '녹색채권'을 발행해 탄소감축을 비롯해 에너지 효율화 등 친환경 활동에 채권 자금을 투입한다고 한다.
전자폐기물 문제도 생산 쪽에서 풀어갈 수 있다. 선택지는 생산업체가 제공하니 이쪽이 맞다. 유해물질을 머금은 폐기물로 버려질 게 아니라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로 제품을 만든다거나, 가급적 탈탄소 방식으로 만든 금속을 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작게는 스마트폰 수명을 늘리는 건 어떤가. 우스갯소리로 "스마트폰은 약정이 끝나는 2년이 넘어가면 고장 난다"는 말이 있다. 제조사들이 2년에 맞춰 자살타이머를 설계한다는 웃픈 이야기도 나온다. 대부분은 쓸수록 줄어드는 배터리 수명을 스마트폰 교체 이유로 꼽는다. 정부가 스마트폰과 노트북 품질 보증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점은 반갑다. 고장이 나도 교체보다는 수리를 택할 사람들이 늘어난단 이야기다. 패키지에서 충전기가 빠지는 추세도 불필요한 낭비를 막는다는 점에서 환경에 청신호다.
시스템 차원의 개선에 더해 시민들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 지금 쓰고 있는 물건은 어떤 공정으로 만들어졌는지. 버리는 단계에서 재활용이 가능한지 확인해본다든가. 철강회사가 정말 탄소중립 약속은 잘 지키고 있는지 들여다 보는 식이다. 친환경 부품이나 패키지를 쓴 제품을 사고, 가급적 교체보다는 수리해 쓰는 것도 괜찮다. 영화 <승리호>처럼 고철쓰레기가 넘실거리는 미래를 맞지 않으려면, 편리함 너머의 부작용을 당장 들여다봐야 한다. 환경에 나중은 없다.
입는 것, 먹는 것도 하나씩 들여다보자. 조금이나마 환경오염의 발걸음을 늦출 수 있다. 내가 입은 옷이 어디서 왔는지, 오늘 먹은 음식이 어떻게 환경에 흠집을 냈는지 되돌아 보자. 내 '몸'은 환경에 어떤 색깔을 칠해왔을까.
� 다음은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의, 옷이 오염시킨 땅에서 바로 입기'로 이어집니다.
똑똑! � 추천해요
도서 <쓰레기책>, 이동학 지음, 오도스, 2020.
쇠가 됐든 플라스틱이 됐든 종착지는 쓰레기다. 인류는 쓰레기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원인이라도 알아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 작가는 2년 간의 세계여행에서 돌아와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처리 방법, 문제 극복 방법을 담은 '쓰레기책'을 내놨다. 답답한 상황 속에서 담담하게 바라 본 현실은 외면할 수 없는 쓰레기 문제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의, 옷이 오염시킨 땅에서 바로 입기
에디터의 노트
우리가 세상에 나와 죽을 때까지 살을 맞대고 함께하는 것이 있죠. 바로 의류인데요, 요즘은 저렴한 가격에 옷을 사서 몇 번 입지 않고 유행이 지나면 새 옷을 사는 것이 대세인 것 같아요. 빛의 속도로 시장에 새 옷이 쏟아지는 이 흐름을 패스트 패션이라고 하죠. 그런데 옷이 생산, 수송, 소비, 폐기되는 모든 과정에서 지구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똑똑한 의(衣)생활을 위해 지금부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봐요.
옷의 산맥이 지구를 아프게 하는 이유
마치 패션(Fashion)의 H가 T로 바뀐 것처럼, 의류 산업엔 가속이 걸렸다.
매년 세계적으로 만들어지는 옷은 1000억벌 이상이라고 한다. 한 논문*에 의하면, 1975년부터 2018년 사이 세계 1인당 직물생산량은 5.9kg에서 13kg으로 증가했다. 또 오늘날 패션 브랜드들은 2000년 이전에 생산하던 의류 양의 거의 두 배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많이 만들어진 옷은 환경에 심각한 해악을 미친다. 의류 산업은 세계 CO2 배출량 중 많게는 10%를 차지한다. 항공 산업 다음으로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한다. 또 의류는 산업 수질오염의 20%에 해당하고, 해양 1차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35%를 발생시킨다. 어떻게 의류가 이렇게 거대한 오염원이 됐을까?
답은 패스트 패션. 기획, 생산, 유통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가격은 저렴하게, 유행에는 민감하게 적응해 항상 새롭고 트렌디한 제품을 매대에 진열하고 소비자를 기다린다. 1주 단위로 새로운 옷이 쏟아져 나올 정도다.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선보인 디자인과 유사한 옷이 며칠 만에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 저가로 팔리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글로벌 브랜드로 유니클로(UNIQLO), 자라(ZARA), 에이치앤엠(H&M)이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패스트 패션의 바람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하이패션의 '민주화'라는 말도 들렸다. 특히 가격이나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비싼 브랜드에서나 볼 수 있는 디자인과 스타일의 옷을 살 수 있으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패스트 패션은 '충동구매'와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가격이 쌀 뿐만 아니라 '1+1'이나 세일 등 다양한 판매 전략에 혹한 소비자가 많기 때문일까.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입지 않게 되는 옷이 많다는 사실은 20%의 옷을 80% 빈도로 돌려 입는다는 '파레토의 법칙'과도 잘 들어맞는다. 저렴하고 트렌디한 패스트 패션 시대의 도래는 결과적으로 '옷으로 산을 쌓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의류의 생산을 의미했다. 가격이 싸니 더 많이 사게 되고, 몇 년이 지나면 유행이 지나버리니 더 많이 사게 된다. 그 옷은 쌓여 산을 이룬다.
나는 내가 가진 옷을 모두 꺼내서 거실에 쌓아보았다. ... "이렇게 많은 옷을 가지고 있다가는 옷에 깔려 죽겠다." ... 내가 가진 옷은 상의 61벌, 티셔츠 60벌, 민소매 상의 34벌, 치마 21벌, 원피스 24벌, 신발 20켤레, 스웨터 20벌, 벨트 18개, 카디건과 모자 달린 트레이닝 셔츠 15벌, 반바지 14벌, 재킷 14벌, 청바지 13벌, 브라 12개, 타이즈 11개, 블레이저 5벌, 긴팔 셔츠 4벌, 운동복 바지 3벌, 정장 바지 2벌, 잠옷 바지 2벌, 조끼 1벌이었다. 양말과 속옷을 포함시키지 않았는데도 총 354가지의 의류를 소유하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한 해 평균 64가지의 의류를 구입한다. — 도서 <나는 왜 패스트패션에 열광했는가>, 엘리자베스 L. 클라인.
반면 소비자가 의류에 쓰는 소득의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에서 사람들이 의류와 신발을 사는 데 쓴 소득의 비중은 1950년대 30%에서 2009년에 12%, 2020년에는 5%까지 감소했다. 기술의 발전과 글로벌 공급망의 발달로 가능했던 변화다. 소비자들은 더는 옷을 한땀 한땀 공들여 만든 장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특히 패스트 패션 브랜드 옷은 싸고 쉽게 구해 입고 버리는 공산품이 됐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옷은 목화를 길러 실을 짜서 직물을 만들고, 직물을 잘라 재봉해서 만드는 건데, 왜 환경오염과 연관되는 걸까? 탄소 배출은 어떻게 발생했을까?
*네이처 리뷰(Nature Review)의 논문을 인용한 수치. 이 섹션의 통계는 별도의 링크가 없다면 다음 논문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혀둔다. "The environmental price of fast fashion", Niinimäki et al, Nature Reviews Earth & Environment, 2020.
발 없는 티셔츠의 '발자국'을 이어보니
수많은 의류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바로 지금 에디터도 입고 있는 티셔츠다.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고 가격도 비싼 편이 아니라 대중적이다. 티셔츠엔 발이 없지만, 전 세계를 열심히 여행한다. 중국에서 목화로 태어나 인도에서 실이 되고, 터키에서 직물로 짜여 방글라데시에서 재봉되고, 선진국의 물류센터와 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는 식이다. 이 긴 여행의 일정표를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글로벌 공급망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의류를 생산하기 위해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과 유통 과정을 체계적으로 조직한 경로다.
의류 산업의 공급망엔 목화가 꽃을 피워 옷으로 만들어지고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는 모든 과정이 포함된다. 농업, 석유 화학, 생산, 운송, 그리고 유통과 판매 과정이 다 들어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노동자 임금 및 처우나 환경 관련 법규와 제도가 느슨한 곳을 찾아 전 세계에 퍼져있다. 의류 산업이 긴 공급망(Long supply chain)을 가진 산업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옷은 기나긴 여정의 모든 단계에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티셔츠에 쓰이는 섬유는 면이나 인공소재인데, 의류 산업에서 항상 큰 파이를 차지해왔던 면을 생산하는 덴 많은 양의 물이 쓰인다. 면화 한 송이를 재배하기까지 3.4ℓ의 물이 필요하고, 면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는 2000ℓ가 들어간다고 한다.** 목화의 재배지는 주로 소득이 낮은 개발도상국인 경우가 많다.
외국으로 수출되는 옷을 생산하기 위해 쓰이는 물 탓에 이미 물이 부족한 중국이나 인도 등지 생산지에 가뭄과 환경오염이 발생한다. 또 목화를 재배할 때 많은 농약과 살충제가 사용된다. 전 세계에서 쓰이는 농약의 10%, 그리고 살충제의 25%가 목화 재배에 사용된다. 농업에 사용되는 화학 물질은 생물다양성과 토양의 생산력에 악영향을 미쳐 미생물, 작물, 벌레 등을 죽인다. 살충제는 주변 땅에 흘러 들어가 식중독을 일으키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인기가 가장 많은 섬유는 면이었지만, 이젠 합성섬유 중에서도 폴리에스터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 세계 섬유 생산량의 60%가 의류 산업에 들어가는데, 2018년 기준으로 이 중 51%가 폴리에스터, 25%가 면이었다. 특히 패스트 패션에 많이 쓰이는 저렴한 폴리에스터는 제조 과정에서 면섬유의 3배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한다. 폴리 섬유는 석유에서 나온다.
생산된 섬유는 실로, 실은 직물로 짜인다. 이 단계에 염색 공정이 포함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물이 많이 사용된다. 섬유 생산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에서 전체 물 사용량의 80%는 염색과 마감에, 12%는 섬유 처리에, 8%는 공급망의 다른 부분에 쓰인다. 또 직물 산업은 생산 과정에서 1만5000종의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유럽의 한 패션업체는 1kg의 직물 당 466g의 화학물질을 사용한다고 한다.
직물을 잘라 의류를 생산하는 과정에선 쓰지 못하고 남는 자투리 천이 발생한다. 이 천은 중고 옷과 함께 폐기 문제를 낳는다. 또 생산 과정에서 티셔츠는 노동자를 갉아 먹는다. 마감과 장식 단계가 특히 노동 집약적이다. 옷을 생산하며 노동자의 기관지에 무리가 가해지는 경우가 있고, 보고된 바로는 폐 관련 질병이나 심하면 암까지도 발병할 수 있다.
소비 단계에서 의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론 세탁 시 사용되는 물과 미세섬유 배출이 있다. 또 의류를 세탁할 땐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양 오염을 가속화한다. 매년 의류세탁에서 배출되는 초극세사 플라스틱만 50만톤이다. 플라스틱병 500억개와 맞먹는 양이다.
언뜻 저렴해 보이지만 이렇게 많은 환경적 외부비용을 발생시키는 옷,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쓰일까? 옷이 소비자와 함께하는 평균 시간은 길어야 3년 반이다. 80%의 옷이 옷장 장식용으로 쓰이는 현실을 생각하면, 사실 3년이란 수명 동안 몇 번이나 입고 버려질까. 그리고 옷의 수명이 다하면 어디로 갈까?
미국인은 한 해에 의류와 직물을 합해 약 36㎏을 버린다.*** 넘쳐나는 의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선진국이 선택한 방법은 아프리카와 같은 개발도상국에 의류 쓰레기를 수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도국 의류 시장의 포화상태나 바다를 넘어온 중고 의류가 내수 생산을 대체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 방식도 막혀버렸다. 남은 방법은 매립지에 버리거나 불태우는 것이다. 문제는 입지도 않은 옷을 태우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2018년에는 H&M이 재고로 남은 의류를 불태운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430만달러(한화 약 49억원) 가치의 재고를 덴마크의 폐기물 에너지 공장에서 불태운 것이다. 버버리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재고를 처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폐기 방식이 에너지를 생산하기는 하지만, 재사용이나 재활용보다는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한국에서 티셔츠 한 장의 가격은 낮게는 1~2만원에 형성돼 있다. 그러나 티셔츠의 가격은 1만5000원이 아니다. 물, 화학 물질 사용, 농약과 살충제, 탄소 배출, 미세섬유와 플라스틱 배출, 그리고 폐기 처분에서 발생하는 비용까지 모두 합쳐 발 없는 셔츠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발자국을 남긴다. 여기에는 개발도상국에서 낮은 임금으로 실을 뽑고 옷을 만드는 노동자의 삶의 조건이나 가죽이나 모피 등을 만들기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의 고통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티셔츠는 비싸다.
에디터가 입고 있는 파란색 긴소매 셔츠를 내려다본다. 생각해보면, 옷은 하나의 시공간적 네트워크다. 태어나서 사용되고 폐기될 때까지 한 벌의 티셔츠는 세계 각지에서 사람, 동물, 그리고 물질과 관계하며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됐다. 사람만 이어봐도 디자이너부터 상품을 기획한 사람, 중국에서 목화를 재배한 사람, 동남아시아에서 실을 짠 사람, 수송한 사람, 인도에서 원단을 가공하고 재봉한 사람, 옷을 입은 사람, 버려진 옷을 태우거나 묻은 사람 모두의 새끼손가락에 보이지 않는 실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실반지가 검은색이라는 것이다. 소비자는 멋진 티를 저렴한 가격에 사서 단지 기쁠 뿐이다.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실반지로 무엇의 대가가, 누구의 생명이 흘러들어오고 있는지는 모른 채.
* 이 섹션의 티셔츠 생주기 및 환경에 대한 영향 관련 통계는 별도의 표기가 없는 경우 "The environmental price of fast fashion", Niinimäki et al.의 인용이다.
**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 탠시 E 호스킨스, 문학동네, 2016, 154쪽.
*** "The global environmental injustice of fast fashion", Bick et al., Environmental Health, 2018.
느리게, 그러나 앞으로
의류 산업의 '지속불가능성'은 경제 시스템에 기반한다. 길고 긴 공급망뿐 아니라 이를 허용하는 세계 자유경제 체제, 수출 주도 성장을 꾀하며 환경과 인권 규제를 낮게 유지하는 개도국의 발전 전략, 그리고 값싼 옷을 입고 또 사는 문화에 익숙한 선진국 소비자의 인식이 한데 얽혀있다. 어느 한 곳만의 움직임으로는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의류 산업이 '탈성장'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해 적은 옷을 더 오래 입는 '슬로 패션', 그리고 미래의 패션 소비는 어떻게 변화할까.
지속불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패션 산업 전반에 공유되고 있다. 2018년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에 참가한 H&M, 버버리, 아디다스 등 의류 업계 기업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30% 감소,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패션 산업 헌장'에 서명했다. 코로나19가 산업에 미친 영향과 전 세계 주요 투자사들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 경향으로 패션 업계의 변화는 더욱더 빨라지고 있다.
변화의 예시로 패스트 패션을 주도해온 H&M이 대안적인 소재로 생산한 시리즈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이 있다. 재킷을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셀룰로스 섬유로 만들고 신발을 녹조류로 제작하는 식이다. 대안 소재를 사용한 옷은 다양한 패션 브랜드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이 워낙 복잡하고 생산되는 데이터도 한계가 있어 그린워싱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한다.
보다 선도적이고 포괄적인 변화를 이끌어온 예로 파타고니아가 있다. 파타고니아는 친환경적인 기업 철학 및 정책, 그리고 반직관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유명해진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다. 창립자 이본 쉬나드는 등반가로서 전 세계를 여행하며 아끼는 산이 파괴되는 장면을 목격했고 자사 제품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고심했다. 그러던 중 파타고니아 임원진을 모아 떠난 여행에서 회사의 환경적, 사회적 책무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그 후 파타고니아는 친환경적인 의류업체로 거듭나며 업계의 변화를 선도하게 된다.
파타고니아의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은 많은 이의 이목을 끌었다. 2011년 블랙 프라이데이에 "필요하지 않으면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Unless you need it)"라는 마케팅 문구를 사용해 화제가 된 것이다.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 회사가 판매한 수많은 의류 제품이 결국 지구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고민한 결과 고품질 기능성 의류를 추구했고, 소비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서 오래 쓰고 수선해서 더 쓰기를 강조한 것이다.
이 외에도 파타고니아가 앞서 주도한 변화에는 유기농 목화 재배, 고객이 수선했던 의류도 무료로 수선해주는 서비스, 재활용 폴리에스터 사용, 기업 매출의 1% 또는 수익의 10%를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지구세', 그리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친환경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인센티브제 등이 있다.
한편, 소비자의 취향과 인식이 변화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에 신호를 보내 더 큰 변화가 가능하다. 많은 이가 이미 지속가능한 패션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20년 미국의 '맥킨지 뉴 에이지 컨슈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6%가 제품을 구매할 때 지속가능성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다른 설문에 따르면 48%의 응답자가 코로나19 이후 환경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답했다.
주목해야 할 소비 흐름 하나는 패션 사용과 소유를 구분해 사용과 경험에 방점을 두는 '공유 경제'다. 해외에는 의류를 렌털할 수 있는 서비스가 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정장 등 자주 입지 않는 의류를 빌려 입을 수 있는 매장이 있다. 둘째로 MZ세대의 가치 지향적인 소비 습관이 있다. MZ세대는 지속가능성과 독특한 정체성을 추구하고 폐기품을 재활용하되 가치를 높인 업사이클링에 거부감이 적다. 환경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기업의 물건을 구매해 그 브랜드를 지지한다.
환경 문제가 '나'의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경주마처럼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문화가 사서 입고 버리는 데 집중된 것은, '지속가능한 의생활'에 대한 논의가 부재했기 때문은 아닐까. 패스트 패션과 충동구매의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를 벗어나 지속가능한 패션을 함께 추구하는 이코 체임버(eco chamber)로의 변혁을 꾀할 때다.
똑똑! 최근 언론에서 자주 다뤄지고 있는 ESG가 한 철 유행일지, 미래의 대세가 될지 궁금하시나요? 똑똑이 정리한 뉴스를 통해 살펴보세요!
1️⃣ 심쿵금지: 자, 따라 해 보세요. '심장아 나대지 마.' 1+1이라고 꼭 두 개나 살 필요 없어요. 세일에 혹하지 말고 내가 더 사랑할 옷, 함께 오래갈 곳을 골라보아요.
2️⃣ 옷관심법: 숨을 천천히 쉬며 옷에 관심을 가지고 '이 브랜드는 친환경적인가'를 자문해보는 건 어떨까요. 시험에 떨어진 브랜드에게 함께 말합시다. '아쉽지만, 당신은 저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3️⃣ 십의민족: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으로 불린 한민족은 이제 최소 10번 이상 입을 옷만 사는 십의민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레벨이 좀 높은 독자라면 30번 입을 옷으로!
4️⃣ 아나바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의 준말이에요. 아껴쓰고 나눠쓰는 경향이 슬로 패션과 연관된다면, 바꿔쓰고 다시쓰는 문화는 패션의 공유 경제나 중고거래와 관련이 깊죠.
5️⃣ 기브기부: 이젠 입지 않지만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미소를 띠게 해 줄 옷, 옷장에 남아있나요? 의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증품에 새 주인을 찾아주는 아름다운가게를 이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에디터의 기브: 한때 GQ를 들춰보던 패션 총아에서 옷을 매주 돌려 입는 직장인이 된 에디터. 아직 입을만하지만 '확찐'의 이유로 입지 못하는 5벌을 비영리단체 '아름다운가게'에 기브!했어요. 가까운 편의점에서 보내니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더군요. 못 입는 5벌은 집 앞의 의류함에 넣었답니다.
� 다음으로 지구를 아프게 하는 우리의 식생활을 돌아보는 '식, 육식이 파괴한 행성에서 바로 먹기'가 이어집니다.
식, 육식이 파괴한 행성에서 바로 먹기
에디터의 노트
'고기는 고기서 고기다'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치느님'과 같은 말들이 보여주듯, 육식은 우리에게 너무나 평범한 생활의 일부가 돼버렸어요. 하지만 누구나 고기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중후반에 걸친 공장식 축산의 발전 덕이었죠. 한국에서 삼겹살과 치킨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몇십년도 되지 않은 일이고요. 육식은 막대한 온실가스를 일으키고 토양와 수질을 오염시킨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오염이 발생할까요? 우리가 고기를 포기할 수 없다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육의 평범성
육식이 문화가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삼겹살은 저렴한 옥수수 사료와 휴대용 가스버너 개발에 힘입어 1980년대에 대중화됐다. 치킨의 경우 1970년대 초반 재래시장에서 '통닭' 형태로 등장했고, 1980년대 프라이드와 양념치킨을 도입한 페리카나, 멕시카나 치킨 주도로 시장이 커졌다. 오늘날, 육식은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됐다. 대중문화 속에서 '함께 고기를 먹는 경험'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요소가 된 것.
육식과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해 동물이 태어나서 도축되는 모든 과정을 경제적 효율성의 칼로 다듬는 과정이 진행됐다. 이에 많은 이들이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짧은 평생을 보내는 동물들의 고통과 복지에 대한 지적,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양계장 내에 온종일 전구를 켜놓는다는 얘기, 위생 관리가 소홀하고 더러운 환경에서 쉽게 병에 걸리는 동물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투입되는 항생제 등에 대한 얘기가 이젠 낯설지 않다.
공장식 축산의 비인도적 사육 방식은 언론 보도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화됐지만, 그렇다고 육식이 쇠퇴하고 채식이 왕좌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고기를 먹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고 습관이 돼 그 어떤 비판도 쉽사리 마음에 와닿지 않는 이 현상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채식을 주로 하는 이를 채식주의자라고 하고, 모든 종류의 동물을 먹지 않는 이를 비건이라고 한다. '고기를 먹는 사람'은 어떨까? 한국어 표현으로는 '육식인'이나 '육식자'라는 표현 자체가 어색하다. 고기를 먹는 행위는 너무나 당연해서, 다른 범주와 구분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육식은 선택임에도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현상을 미국의 심리학자 멜라니 조이는 '육식주의'로 설명한다.
육식주의는 특정 동물들을 먹는 일이 윤리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다. ... 육식주의자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따라 고기를 먹는데, 선택은 항상 신념에서 비롯된다. — 도서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 36~7쪽.
"선택은 신념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육식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거나 정당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한 영향도 무시할 정도라는 '습관적 믿음'으로 볼 수 있다. 플라스틱이나 전자제품을 쓰고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의류를 입는 이가 글로벌 공급망이 만들어내는 환경 파괴에 무지한 것처럼, 저녁 회식에 '소고기!'를 외치는 회사원 역시 '평범함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묻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육식이 동물에게만 몹쓸 짓이 아니라 지구를 오염시켜 다음 세대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라면 어떨까?
축산업, 지구를 위협하다
'평범한' 육식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고 삼림을 파괴하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배설물로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킨다. 기후변화 자료를 시각화하는 카본브리프에 의하면 음식 생산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 중 약 4분의 1에 해당하며, 사용 가능한 토지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축산을 포함해 농업용으로 쓰이는 물은 전체의 70%로, 산업용(19%)이나 가정(11%)에서 쓰이는 물의 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고기와 유제품은 전체 온실가스 중 14.5%를 생산한다. 산업화 이전 대비 온도 상승을 2도 이내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인류의 식생활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각 식품군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를 비교해보면 음식 1kg당 배출량이 소(육우)의 경우 60kgCO2, 양고기 24kgCO2, 치즈 21kgCO2, 소(우유소) 21kgCO2, 돼지고기 7kgCO2, 닭고기 6kgCO2 등이다. 왜 육우의 배출량이 월등히 높을까? 소와 염소는 되새김질하는 반추동물인데, 소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배출한다. 그래서 돼지나 닭과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저하게 차이 난다.
대기에 가장 많이 퍼진 온실가스는 순서대로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다. 축산업 중 특히 소를 키울 때 메탄과 이산화질소가 발생한다. 메탄은 가축의 트림과 배설물에서 나오는데, 세계 메탄 배출의 37%가 축산업에서 나오고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3배 더 온실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이산화질소는 가축의 배설물이나 작물 재배에 이용되는 비료에서 나온다. 이산화질소 배출의 65%가 축산업이며 이산화탄소보다 300배 더 온실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아마존에서 생산된 곡물을 먹고 자란 소고기를 먹는 일은 석탄 발전소에 빗대볼 수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최악의 일이다. — 월터 윌렛 하버드 대학 교수
전 세계의 고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선 목장을 넓히고 사료를 재배할 농경지를 마련해야 한다. 아마존을 포함한 다수의 열대 지역에선 소떼를 기를 목장을 만들기 위한 무분별한 삼림 벌채가 일어나고 있다. 삼림은 인간이 생산한 온실가스의 30%를 흡수하는데, 목장을 짓기 위한 벌채는 한편 이러한 '탄소 흡수' 역량을 축소할 뿐만 아니라 소떼가 배출하는 가스로 추가적인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돼지 1만 마리가 수용된 큰 축사 서너 곳을 관리하는 농부의 골칫거리를 상상해보라. 축사에 갇힌 돼지들은 배설물을 엄청나게 쏟아낸다. 돼지 1만 마리에서 나오는 배설물이 작은 도시 하나에서 나오는 배설물만큼 많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있다. — 도서 <육식의 딜레마>, 케이티 키퍼, 73쪽.
마지막으론 가축 분뇨의 문제가 있다. 배설물은 하수로 들어가거나 토양에 거름으로 쓰는데,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킨다. 분뇨에서 발생한 암모니아 등의 가스로 인해 축산 종사자가 질식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모두 고기를 끊을 수 없다면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숲을 태우며,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키는 축산업은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육류 소비가 계속 증가해 2030년에는 정점을 찍는다는 '피크 미트(Peak Meat)'라는 용어도 있다. 과학자들은 고기 소비 증가가 환경의 대재난과 '기후 비상사태'를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어떤 대안들이 나오고 있을까.
국내 채식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한국 채식협회에 따르면 2008년 15만명이었던 채식 인구는 2018년 100~150만명까지 늘었다. 이젠 마트에서 식물성 고기나 '채식 도시락' '비건 라면' 등 비건 식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채식 식당이나 비건 빵집도 늘고 있고,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급식에 채식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채식 선택제'를 도입해 '채식 선택권'을 보장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채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느는 것과, 고기를 끊거나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채식주의자의 60%가 지난 24시간 내에 고기를 먹었음을 인정했다는 통계도 있다.* 고기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불에 구워 갈변하면서 특유의 향을 내며 감칠맛을 내게 되는 '마이야르 반응'과 관계가 있다. 풍부한 향내, 육즙, 지방, 감칠맛이 함께 작용하는 스테이크의 맛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인간이 감칠맛에 끌리는 것은, 유전자와 관계있을 가능성이 높다. 감칠맛 수용체 유전자가 기능하지 않은 자이언트 판다의 경우, 육식동물과 유사하게 장의 길이가 짧은데도 식단의 99%가 대나무다. 고기에 관심이 없는 것이 영양보다 '맛' 때문이라는 거다.
이런 고기의 맛은 자연적이라기보다 '기획'된 것에 가깝다. 풀을 뜯으며 자란 소의 고기가 맛이 좋지 않아 옥수수 사료를 주고, 수컷 돼지는 고기에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거세하며, 저품질의 고기의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 화학 용액을 주입하기도 한다. 환경을 적게 오염시키는 방식으로 고기를 '기획'할 순 없을까?
다른 재료나 생산공정으로 만든 '고기'를 대체육이라 한다. 대체육은 식물성 고기와 배양육으로 나뉘는데, 양 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통해 고기의 맛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한 전망에 따르면, 2030년까지 대체육은 육류 시장의 18%, 배양육은 10% 점유할 것으로, 2040년까지는 대체육이 25%, 배양육이 35%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식물성 고기의 경우, 콩·쌀가루·비트 등을 이용해 익히지 않은 상태의 색깔, 고기 굽는 냄새, 육즙의 색, 식감 등을 실제 고기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고기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기 대신 '유사 육식경험'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제 마트에선 식물성 고기 패티 제품을 찾아볼 수 있게 됐고 롯데리아나 버거킹과 같은 유명 햄버거 체인도 채식 패티를 이용한 메뉴를 내놓고 있다. 맛도 잡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을까?
현재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소고기와 대표적인 식물성 대체육(비욘드 버거, 임파서블 버거)의 탄소 발자국을 비교했을 때 비율은 거의 20:1로 대체육이 월등히 낮다. 대체육의 대승이다. 그러나 건강의 관점에서는 식물성 고기에 포화지방과 염분이 다량 포함돼 있기 때문에 소고기보다 낫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한편 배양육은 동물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영양을 공급하는 배양액에 담가 생물반응기에서 길러내 만든다. 실험실이 '고기 농장'이 되는 셈이다. 실제 동물을 기를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배설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포를 배양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 단축의 과제가 있다. 또 세포 증식을 위해 사용되는 혈청이 소 태아에서 채취되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 소지가 있다.
자체 기술 개발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내 스타트업이 있다. 씨위드(Seawith)의 이희재 대표는 똑똑과의 인터뷰에서 '바다와 함께한다'는 씨위드의 사명처럼 "저희는 해조류(Seaweed)를 비용 절감과 시간 단축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배양육 가격 문제의 핵심인 1리터당 10만원이 넘는 소태아 혈청을 해조류 배양액으로 대체하는 자체 개발 기술을 내세웠다.
추출된 줄기세포 성장의 형태를 잡아주는 지지체는, 말하자면 '집' 역할을 한다. 이 대표는 "미역, 다시마와 같은 갈조류는 세포의 '집'으로 사용하고, 스피루리나 등의 미세조류는 세포의 '밥'인 배양액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해조류를 사용해 만든 고기'를 생산한다는 얘기다. 해조류는 바다라는 상대적으로 제약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 에너지 효율이 높다. 이 대표는 "미세조류는 많이 키울수록 이산화탄소를 소모하며 산소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기의 미래'는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 대체육과 배양육의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류세라는 설국열차에 탑승해 그린뉴딜이라는 다음 정거장으로의 질주를 시작한 인류에겐 생활 전반에 쓰이는 모든 물건의 '발자국'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플라스틱, 쇠, 옷, 그리고 고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활에 너무나 자연스레 자리 잡은 글로벌 공급망의 '검은 실'들을 가치의 연결고리로 바꾸기 위해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파란 티셔츠에서 개도국 농부의 얼굴을 보고, 갈색 스테이크에서 뜨거워지는 지구를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다음 정거장이 절멸일지, 변혁일지를 결정할 힘은 시민에게 있다.
� 다음엔 '인공지능과 포스트 휴먼'을 주제로 한 세 번째 리포트로 이어집니다.
*도서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 마르타 자라스카, 2018, 125쪽.
똑똑! � 추천해요
도서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 지음, 노순옥 옮김, 모멘토, 2011.
왜 우린 육식에 관한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그렇게 접하고도 금요일 저녁에 '고기!'를 외치게 되는 걸까요? 저자 멜라니 조이는 '육식주의'(Carnism)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왜 특정 동물의 고기를 먹는 일이 정당화 됐는지'를 파헤칩니다.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육식은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먹는 일이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 것에는 심리적 기제가 있다는 것이죠. 저자는 왜 애완동물과는 달리 돼지나 소에게는 연민이 작동하지 않는지, 개체에 이름을 붙이는 강아지와는 달리 돼지나 소는 하나의 추상적인 범주로만 생각하게 되는지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을 동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