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카카오택시를 '갑질 1등'으로 만들어줬나

서울 시내 도로를 주행 중인 카카오T블루 택시. 박민제 기자
팩플 현장에서
“그 앱 깔았죠?”
2016년 택시를 직접 몰고 민심을 취재했을 때 일이다. 5년 만에 택시 운행에 나선 기자에게 한 선배 기사가 물었다. 그가 보여준 것은 카카오택시 기사용 앱. “‘길빵’(배회영업)만으론 사납금 채우기 힘들다”며 “요즘엔 다 이걸 쓴다”고 말했다.
2011년 처음 면허를 땄을 때만 해도 택시영업의 기본은 길빵이었다. 손님이 없을 때면 고개를 도보 방향인 오른쪽 45도로 고정하는 게 기본자세. 목 아픈 것 정도는 참아야 했다. 손님을 찾아내는 눈썰미가 ‘사납금 + α’를 가져가는 기사와 사납금조차 채우지 못하는 기사를 구분 지었기 때문. 그랬던 택시 영업의 룰이 2015년 카카오택시 출시와 함께 길빵에서 호출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5년 여만에 카카오택시 운영사 카카오모빌리티(이하 카모)는 이용자 2800만명, 택시기사 23만명이 가입한 국내 1위 택시·모빌리티 플랫폼이 됐다. 언제 올지 모르는 천수답식 손님·택시찾기에 지쳤던 기사와 이용자들의 열렬한 지지가 플랫폼을 키웠다.
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카모는 ‘갑질 플랫폼 기업’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파트너였던 택시 단체는 ‘카카오T 호출 거부 운동’을 준비 중이고 여당과 정부는 “플랫폼 규제”를 외친다. 카모에서 시작된 반(反)플랫폼 정서는 급기야 카카오 본사로까지 번졌다. 한때 시가총액 75조원(6월 23일 종가)에 달했던 기업가치는 55조원(13일 종가 기준)으로 급락. 공정위는 13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개인회사인 케이큐브홀딩스 본사에 대한 현장 조사에 나섰다. 연초만 해도 김 의장의 전 재산 절반 기부 서약으로 찬사를 받았던 카카오가 이젠 ‘갑질 플랫폼’ 소릴 듣고 있다.

카카오T블루 가맹택시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카카오모빌리티의 오판 셋
카모는 뭘 그리 잘못한 것일까. 업계 안팎에선 '타다 금지법'으로 불린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난해 4월 이후 카모가 세 번의 큰 오판을 했다고 본다.
① ‘내 새끼’ 먼저 키우기 : 카카오T로 부를 수 있는 택시는 크게 두 종류다. 직영·가맹택시(카카오T블루)와 일반 택시. 호출비 최대 3000원을 내는 카카오T블루는 승차거부 없고 좋은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초기엔 운행 대수가 많지 않아 영향력이 적었다. 그런데 지난해 카모는 가맹 택시를 공격적으로 늘렸다. 올해 2분기 기준 2만 6000대, 택시 전체 대수(25만여대)의 10%다.
문제는 원래 일반택시를 부르던 플랫폼에 직영·가맹 택시를 섞어놓은 것. 화면 노출 순서도 직영·가맹 택시가 먼저 나오고 일반택시가 밑에 나오게 구성했다. 호출을 중개하는 ‘심판’이 ‘선수’로 뛰자 특혜 의심이 커졌다. 콜을 가맹 택시에 몰아준다는 택시기사 반발이 1년 반 내내 이어졌다. 카카오가 아무리 알고리즘대로 배분했다고 해명해도 ‘알고리즘 자체를 가맹 택시에 유리하게 설계하지 않았겠느냐’는 의심은 여전하다. 전국 비(非) 카카오 가맹 택시 22만 4000대의 원망을 한몸에 받게 된 이유다.
② “무료라 했는데…” : 카모는 초창기 ‘무료’ 플랫폼을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이후 기사에게도 승객에게도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 많아졌다. 올해 초 선보인 프로 멤버십이 대표적. 가맹하지 않은 기사도 월 9만9000원을 내면 배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사실상 유료화다. 지금까지 카모와 함께 플랫폼을 키웠다고 생각해 온 택시업계에선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여론 반발에 밀려 접긴 했지만 지난달 승객에게 받는 스마트호출료를 최대 5000원으로 인상하려한 것도 유료화 시도의 일환. 3800원 기본요금 택시에 호출비 5000원을 더 받겠다고 하니 여론의 반발이 컸다. 이양덕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 전무는 “2015년 이 사무실에 찾아와 ‘우리는 유료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랬던 (카모) 사람들이 독점 상황이 되니 변했다”고 말했다.

서울개인택시조합이 2019년쏘카 서울사무소 건물 앞에서 '타다 퇴출'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③ “상생이라 얘기하고 견제라 쓴다” : 1위 플랫폼 자리를 굳힌 카모는 경쟁자 견제를 본격화했다. 지난 3월부터 타다, 우티(SK텔레콤·우버 합작회사) 등 타 가맹택시 기사가 카카오T 일반 호출을 이용할 경우 제재하고 있다. 카카오T 콜을 받을 거면 돈 내라’는 엄포. 규모가 작은 반반택시 등은 카모와 제휴를 맺었다. 상생을 내세웠지만, 현실적으로 카카오T 호출 없이는 기사들 생계유지가 어려운 여건을 이용해 경쟁 사업자를 견제한 셈.
카모를 1위로 만들어 준 건 누구?
카모가 이런 일련의 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던 배경은 택시 호출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덕분이다. 이용자도 택시기사도 카카오T 외 마땅한 대안이 없다. 카모가 가격을 올려도, 정책을 바꿔도 이 앱을 떠나지 못한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플랫폼 특성상 독점을 추구하는 경향이 크고 그 후 마음대로 하려는 속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한건희 디자이너
하지만 이를 카모만의 잘못이라 볼 순 없다. 업계 1위가 된 데에는 카모의 노력만큼 정부·국회·택시의 공도 크기 때문이다. 실제 2013년 우버의 한국 진출 이후 정부·국회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카모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끊임없이 제거해왔다. 우버가 카풀 형태의 우버 엑스를 서울에서 시작했을 때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경찰에 우버를 고발했다. 법원은 벌금형을 선고했고 글로벌 서비스 우버는 한국에서 지지부진 했다. 타다가 등장했을 땐 국회에서 여객자동차법을 개정해 서비스를 막았다. 물론 이 모든 정부와 국회의 정책 배경엔 때마다 ‘타도 ○○○’을 외치며 실력행사에 나섰던 택시업계가 있었다. 플랫폼 업계 한 관계자는 “카모의 잘못도 크지만, 택시업계 목소리에 이끌려 근시안적 정책을 편 정부와 국회도 이 상황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와 국회의 ‘플랫폼 갑질 손보기’가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경쟁의 판은 만들지 못한 채 '피해자가 많다고 하니 1등 플랫폼은 손 좀 보자'는 식으로 흘러가서다. 독점 플랫폼의 전횡을 막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플레이어들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판을 짰는지 정부와 국회는 먼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국토부는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키면서 '더 많은 타다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법 시행 5개월째, 더 많은 타다는 어디로 간 걸까.
택시시장 강자된 카카오T…‘수퍼앱 횡포’ 우려 커진다

카카오모빌리티의 가맹택시 카카오T블루에 승객이 타고 있다. [사진 카카오모빌리티]
모빌리티 플랫폼 카카오T가 없는 게 없는 '슈퍼앱'으로 진화하고 있다. 커진 영향력 만큼, 업계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무슨 일이야
15일 카카오모빌리티(이하 카모)에 따르면 카카오T 앱에선 현재 15개 이상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원거리 교통수단으로 항공·기차·시외버스·셔틀이, 중단거리에선 택시·전기자전거가, 자가운전 관련으론 대리·내비게이션·주차·세차·정비·내차팔기 등이 있다. 최근 여기에 퀵·택배도 추가, 물류까지 영역을 넓혔다. 회사 관계자는 “서비스형 모빌리티(MaaS) 플랫폼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게 왜 중요해
카모가 뛰어든 시장, 판이 바뀌고 있다. 무료 서비스로 사람을 모은 뒤 규모가 갖춰지면, 프리미엄 모델을 내밀어 사실상 유료화하는 식이다. 택시(2015년)가 그랬고 대리(2016년)도 그랬다. 기사는 플랫폼을 떠나기 어렵고, 이용자는 오른 요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국내 택시회사 한 관계자는 “택배·퀵·세차·정비 등 카카오T에 들어온 다른 서비스도 비슷한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카카오모빌리티 매출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택시 시장엔 도대체 무슨 일이?
카모는 지난해 130억원 적자를 냈다. 하지만 매출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지난해 카모 매출은 2800억원(연결 기준)으로 전년(1048억원) 대비 167% 증가했다. 택시 자회사 매출만 890억원이다. 일반 법인택시 일평균 매출이 지난해 5%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 업계에선 지난해 일명 '타다금지법' 시행 후 독보적 1위가 된 카카오T가 수익화를 위해 플랫폼 영향력을 과도하게 행사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① “평점 낮으면 NO”
카모는 오는 22일부터 택시 기사용 유료 요금제 ‘프로 멤버십’에 새로운 약관을 적용한다. 기사의 평점(승객의 평가점수)이 낮으면 카모가 멤버십 자격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시대 카카오T에 들어오는 택시 콜(호출)이 택시기사들의 생명줄이나 다름 없다는 점. 카카오T엔 하루 150만건 안팎의 콜이 몰린다. 지난해 무료로 콜을 받는 일반 택시기사들이 카모가 가맹택시(카카오T블루)에 좋은 콜을 몰아준다고 반발한 것도 그래서다. 카모는 콜을 더 받고 싶어하는 기사 수요를 반영해 월 9만9000원에 배차 혜택을 주는 프로 멤버십을 올해 초 선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돈을 내더라도 카카오T 평점이 낮으면 카모가 멤버십 가입을 차단한다는 취지다.
이양덕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 전무는 “사업자와 근로자가 사업 주체인데 주객이 전도돼 플랫폼이 갑질을 주도하는 희한한 세상이 돼버렸다”며 “카모는 이젠 아무리 우리가 얘기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② 요금은 비싼 순서대로
카카오T로 택시를 부르면 가격이 비싼 블랙, 벤티, 블루, 스마트호출 순으로 표시된다. 추가 요금 없는 일반 택시 호출은 창을 밀어 올려야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 그마저도 부르면 대기시간이 긴 택시가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 모빌리티 스타트업 한 대표는 “주변에 빈 차가 많은데도 승객이 하차하는 택시를 찾아준다는 메시지가 뜨는 경우도 있다”며 “선택은 할 수 있지만 사실상 비싼 요금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사용자 화면이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뭐라고 해?
① 기사에 약관 개정은?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카모 관계자는 “플랫폼에서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한 기사에게 보다 많은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들에게 가혹한 것 아니냐는 질의에 “(기사마다) 영업패턴이 다 다르고 여전히 배회영업이 중요한 영업수단”이라고 덧붙였다.

카카오T 앱 초기 화면에 나오는 가맹택시 카카오T블루 프로모션 이미지. [사진 카카오T]
② 승객에 비싼 택시 강요는?
빠른 연결이 가장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카모 관계자는 “이용자가 이동을 원할 때 가장 빠르게 서비스를 연결해 주는게 최우선 가치라 연결 확률이 높은 서비스 순으로 사용자 화면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래도 기사가 수락해야 하는 일반 택시보다, 자동배차되는 유료 서비스들이 호출에 응할 확률이 높을 수 있다”며 “택시를 단순 이동 수단이 아닌 서비스로 봐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③ 알고리즘은요?
빈 차가 앞에 있어도 먼 곳의 차가 배차되는 이유에 대해선 “앞에 차량이 있어도, 해당 기사가 콜을 골라잡기한 이력이 있거나, 현재 골라잡고 있는 택시이거나, 평점이 낮은 택시일수 있다. 이런 변수들 때문에 생기는 오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택시 배차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오히려 플랫폼 기능이 떨어지는데 그런 일을 우리가 왜 하겠느냐”고 덧붙였다.
앞으로는?
카모는 올 들어 구글, 칼라일그룹, LG 등 국내외 유력기업으로부터 5164억원을 투자 받았다. 현재까지 누적 투자금은 약 1조 164억원. 두둑한 실탄을 바탕으로 카모는 택시에서 확인한 성공방정식을 다른 시장에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투자유치를 바탕으로 다양한 신규사업에 진출하고 기존 서비스를 고도화겠다"며 "시너지 낼 수 있는 스타트업에도 적극 투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모빌리티 누적 투자 유치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변수는?
카카오T는 전 국민의 80% 이상이 택시 탈 때 쓰는 앱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라 볼만 하다. 그래서 카모를 주목하는 곳도 여럿.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카모의 택시사업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다. 좋은 콜을 가맹택시에 몰아줬다는 의혹에서 시작했지만 조사는 전방위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 행위를 했는지 등을 조사 중”이라며 “다만 플랫폼 특성상 어디까지가 시장인지 획정하는 문제 등으로 인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빌리티업계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한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최근 카모가 ‘상생’을 내세우며 다른 스타트업을 종속시키고 있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며 “다만 이는 '타다 같은 서비스를 많이 만들어 내겠다'고 공언해 놓고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국토교통부의 잘못이 크다”고 지적했다.